장례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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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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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시체를 관에 넣지 말고 동문 밖 모래밭에 버려서 까마귀 같은 짐승들 먹이가 되게 하시오.” `동짓달 기나긴 밤에…’와 같은 주옥같은 작품으로 시조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황진이가 운명하면서 남긴 말이다(성낙은 편 고시조산책). 자신의 삶을 부끄러이 여겼거나 스스로 폄훼했던 것일까.
 관촌수필로 대표되는, 리리시즘에 입각한 농촌문학으로 평생을 살다간 작가 이문구의 유언은 보다 구체적이다. “내 죽으면 내가 쓴 글은 보이는 족족 모조리 불태워라. 시신은 화장하라. 무덤을 만들지 말라. 내 살았던 흔적을 지워라.” 그가 쓴 작품들은 한결같이 한국문학사에서 한 줄도 버려서 안될 귀중한 것들이다. 그런데도 그는 이런 유언을 남겼다. 다 부질없다는 것일까.
 황진이의 그 유언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새들이 먹고 남은 그의 뼈를 평양부근의 남정현(南井峴)에 장사지내주었다. 훗날 임제(林梯)가 평안도사로 부임하던 길에 무덤을 찾아 술을 치며 노래했다.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웠는다/ 홍안은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는다/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허 하노라.’  이문구 선생 역시 그의 뜻대로 화장하고 무덤은 만들지 않았을지 모르나 엊그제 사람들은 그 사후 3년여만에 보이는 족족 태워 없애달라고 유언한 그 글들을 모아 `이문구 전집’을 발간하고 그를 추모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화장률이 매장률을 앞질렀다고 한다. 내세관이 바뀐 것인지 어쩐지는 몰라도 분묘나 사후의 생전 명성 유지 같은 것이 부질없다는 것에 공감하는 세태의 흐름일 것이다. 정녕 기릴 가치가 있는 사람들은 황진이나 이문구의 예에서 보듯 본인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고인을 추모하는 것이 이승이다. 호화 분묘를 만들거나 자비(自費) 추모사업을 벌이는 우리 사회 장의(葬儀)문화는 이제 역사박물관에 보낼 때가 되었다.
 정재모/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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