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바다를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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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바다를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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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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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시 종 (시인)  지금부터 69년 전, 1941년 7월 당시 25세던 아버지는 잇몸질환으로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23세인 아내, 우리 어머니께 가슴 아픈 유언을 하셨다. 내가 죽으면 좋은 사람을 만나 팔자를 고치고 어린 규휘 형제 눈에 눈물이 나지않도록 잘 키워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하고 힘없이 눈을 감고 말았다. 젊은 아버지는 눈앞의 두 딸만 보셨지, 뱃속에 있는 나의 존재는 까맣게 모른 채 숨을 거두셨다. 어머니는 논도 밭도 없는 가난한 집에 연세 많은 시부모님과 시동생, 두 딸을 키우면서 가정을 지켜 나가셨다. 재혼을 부추기는 이들도 적지 않았지만 젊은 어머니는 마음을 다져먹고 청상이 된 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시부모님을 정성껏 모시고 두 딸을 키우면서 곁눈질 한번 않고 충실한 며느리와 어머니가 되셨다.  딸 둘만 남기고 남편이 죽어, 대(代)가 끊길 것 같았지만 여섯 달 뒤 유복자가 태어났는데, 옥동자가 태어나 암울한 집안 분위기가 희망적인 분위기로 상승이 되었다. 그 유복자가 바로 나다.  올여름 8월8일, 선친이 어머니께 한 슬픈 유언이 갑자기 생각나고 새삼 가슴이 막혀 시원하게 눈물을 흘렸다. 내가 우울증에 걸린 게 아닌가 생각했는데, 우울증은 여름보다 햇빛이 희박한 겨울철에 일어나기 일쑤다.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생기려고 어두운 생각이 들었는가 했지만, 아무 일 없이 그날이 지나갔다. 이틀 뒤 중앙일보를 보니 필리핀에서 시집온 자스민(33세) 여사의 부군 이씨(45세)가 물에 빠진 딸을 구하고, 대신 자기 목숨을 바쳤다. 그 날이 바로 8월8일이었다니 내가 어머니의 불행을 슬퍼하던 날, 자스민 여사도 부군을 잃고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11살의 물에 빠진 딸을 구한 자스민 여사의 부군은 향년이 45세였고, 직업은 선장이었다. 피서 갔다가 변을 당한 곳이 영월군 김삿갓면의 계곡으로 수심이 3미터가 넘었단다. 16년 전 자스민은 12세나 위인 남편 이 씨의 적극적인 구애를 받아들였는데 필리핀 아가씨 자스민은 의과대 학생이요, 보컬 그룹의 리더 가수요, 미스 필리핀 지역 예선의 입상자로 재주와 미모를 갖춘 잘 나가는 필리핀의 재원이었다. 그러나 사랑을 위해 세속적인 영예를 포기하고, 한국 청년의 아내가 되었고, 자스민의 코리아드림이 가동되었다. 현재 자스민은 우리나라에 시집 온 외국인 출신 신부 중 똑소리나는 한국말의 달인으로 교육방송의 외국어 강사요, 교육방송 다큐멘터리 전문번역작가로 눈부신 활약을 하고 있다. 뜻밖의 익사 사고로 남편을 잃고 슬픔에 잠겨 몸도 잘 못가누겠지만 남편 이 씨가 남긴 오누이를 떳떳한 인재로 키우는 것이 딸을 구하고 대신 목숨을 바친 남편의 뜻을 살리는 길이 될 것이다. 큰 꿈을 이루기 위해 한국을 조국으로 선택한 자스민 여사의 꿈이 한 치의 차착도 없이 확실하게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불가(佛家)에서는 고난 많은 세상을 고해(苦海)나 화택(火宅)이라고 하는데, 나는 `슬픔의 바다’라고 새로운 이름을 지어본다. 18세의 월남신부가 결혼한 지 일주일도 못되어 정신질환을 앓는 남편에게 피살됐다. 꿈의 속성은 이루어지는 것도 꿈이지만, 경우에 따라선 깨어질 수도 있는 것이 꿈이기도 하다.  `슬픔의 바다’를 항해하면서, 행복해지기 위해 꿈을 갖고, 부단히 꿈을 실천하면서 사는 것이 `슬픔의 바다’를 슬기롭게 건너가는 방법이 될 것이다. 자스민 여사와 그 분의 `오누이’가 아버지 없는 세상을 어둡지 않고 밝게 보람차게 꿈을 이루면서 살기를 두 손 모아 빈다. 한평생 아버지 없이 세상을 살아왔기 때문에 남편 없는 아낙네와 아버지 없는 자녀의 처지가 남의 일 같지 않고, 매양 나의 처지인 양 안쓰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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