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경구, 그의 연기는 언제나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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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경구, 그의 연기는 언제나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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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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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열혈남아’서 `똘기’ 많은 깡패로 명연기 펼쳐
 
농익은 연기는 관객의 오감을 즐겁게 한다. 그런데 한 단계 더 나아가 `그 배우가 아니면 안된다’고 생각하게 하는 연기는 탄성을 자아낸다. 물론 그런 적역을 만나는 것에는 운도 필요하지만 어쨌든 다른 배우는 전혀 대체할 수 없는 연기를 펼친다는 것은 분명 경외감을 주는 일이다.
 지난 30일 공개된 `열혈남아’(감독 이정범, 제작 싸이더스FNH)의 설경구(38)가 그렇다. `열혈남아’는 선배의 복수에 나선 깡패가 죽여야 하는 놈의 엄마 주위를 맴돌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설경구는 2002년 `공공의 적’과 `오아시스’ 이후 다시 한번 특유의 천재적인 섬뜩함을 내보였다. 그가 연기한 앞뒤 안가리는 날 선 조직폭력배 재문은 설경구라는 배우의 개성을 온전히 담아낸 캐릭터였다. 그가 재문이고 재문이 그였다.
 그래서 처음부터 시비를 걸었다. 시사회 직후 마주앉은 그에게 “너무 잘할 수 있는 역을 선택한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자 설경구는 “에이…. 내가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아나. 그건모르는 것이다. 내 것이라는 것, 내 연기라는 것은 없는 것이다”라고 바로 받아쳤다.
 재문은 시쳇말로 `똘기’가 있는 놈이다. 살기 위해 손에 칼을 쥔 깡패라 독하고 저열한데, 마음 속에 불까지 담고 있어 순간적으로 확 돌아버리는 기질이 다분하다.
 `비열한 거리’의 병두(조인성)나 `거룩한 계보’의 치성(정재영)과는 다른 놈인 것. 다시 물었다. “사실 `똘기’ 있는 놈 연기가 전공 아니냐”고. 그러자 이번에는 시치미 작전이다.
 “에이, 내가 언제 `똘기’ 있는 역을 했다고…”라며 딴전을 피운 그는 “`오아시스’의 종두도 자기 세계와 가치관 안에서 갈 길을 간 것일 뿐 `똘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이렇게까지 나온다면야. 좋다. 어차피 그의 연기는 살 떨리게 훌륭했으니. 또 항상 `역도산’만 해야 하는 법은 없으니까. 질문을 바꿨다. 상투적이지만 왜 이 영화를 선택했을까.
 “`열혈남아’ 시나리오는 보는 사람 모두가 홀딱 반할 정도로 훌륭했어요. 이창동 감독님도 시나리오를 보시더니 제가 출연한 영화 중에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지셨고 결국 군산 촬영장까지도 한번 내려오셨어요. 여지가, 여백이 많은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재문 캐릭터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정형화된 역이 있는 반면, 연기하기에 따라 달라지는 역도 있죠. 재문이 그랬어요”
 재문은 선배의 복수를 위해 눈에 핏발을 세우고 돌진하지만, 머뭇거리는 순간을 의외로 많이 보여준다. 가슴에 불을 품고 있는 놈이지만 그 불이 꼭 분노로만 전환되지는 않는 것. 불은 뜨거운 눈물과 인간애로도 바뀐다.
 설경구는 “재문은 한마디로 성격 파탄자라고 할 수 있다. 독한 놈이긴 하지만, 마음 속에 잊고 있던 무엇이 탁 하고 건드려지면 그것으로 무너질 수도 있는 놈”이라고 설명했다.
 뒤에서 칼을 마구 쑤시는 것도 재문이지만 기름을 번드르르하게 발라 뒤로 빗어넘긴 헤어스타일을 하고 `유 민 에브리씽 투 미(You mean everything to me)’를 `한글 발음’으로 부르면서도 감정을 한껏 잡는 것도 재문인 것.
 그는 시사회에 앞서 “영화를 보고 모두 어머니께 전화 한통 드렸으면 좋겠다”는인사말을 했다. 죽여야 하는 놈의 엄마 앞에서 독하려고 마음을 다잡지만 어느새 죽은 자신의 엄마를 발견하는 재문이기 때문이리라.
 “엄마가 생각나는 영화 아닌가?”라고 반문한 그는 `평소에 엄마한테 잘하느냐’는 질문에는 “못하지”라며 또 딴소리를 했다. 그나마 “전화는 자주 드리려고 한다”는 말이 뒤따라왔다.
 “대화라고 해야 뭐 있나. `엄마 뭐해?’ `밥 먹었어?’ `별일 없지?’, `아버진?’ 뭐 이 정도죠. 그놈의 밥은 왜 그렇게 중요한지…(웃음). 또 아버지 안부를 물으면서도 바꿔달라는 말은 절대 안해요(웃음). `다음주에 갈게’라고 말하면 다음주에 꼭 가요”
 재문은 절대 속내를 비치지 않는다. 그것은 평소 설경구의 모습과 흡사하다. 둘의 공통점은 또 있다. 그러면서도 바보처럼 종종 속내를 홀딱 들켜버리곤 한다는 것.
 그래서 둘 다 열혈남아다. 가슴에 불이 있기에 터져나오는 것이다.
 매사 심드렁하고 순간순간 독한 것 같지만 사실은 그 사이에 여린 잎 같은 감성을 숨겨둔 설경구. 그래서 그의 연기는 늘 맛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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