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꺾인 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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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꺾인 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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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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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기(傲氣)’는 가진 바 능력이 부족하면서도 남에게 지기 싫은 마음이다. `거만할 오(傲)’ 자를 쓰지만 잘난 체 하며 남을 업신여기는 것을 뜻하는 `거만’이나 우쭐대며 건방진 경우를 두고 쓰는 말 `교만’과는 차이가 있다. 영어에서 거만과 교만은 둘 다 `애러건스(arrogance)’나 `호티니스(haughtiness)’라는 독립 단어가 있지만 `오기’를 뜻하는 단어는 없다. 오기를 번역하려면 `언일드 스피리트(unyield spirit)’같은 합성조어를 써야 한다.
 서구 사람들에게 강한 승부 근성이 없지도 않을 텐데 왜 오기라는 독립단어는 일찍이 없었던가. 오기란 말 자체가 가당찮게 남을 이기겠다는 부정적 의미를 본래부터 담고 있는데, 영어권 사람들이 본디부터 그런 비뚤어진 마음씨를 갖고 있지 않아서 그런 단어가 일찍이 생겨나지 않았을까. 어쨌든 제 풍신은 생각지 않고 남에게 지는 건 죽어도  싫어하는 심사는 우리네 유전형질의 하나인지도 모른다.
 오기 부리는 상황으로 당랑거철(螳螂拒轍)이란 한자말이 있고, 우리 말에도 계란으로 바위 치기란 속담이 있다. 하찮은 사마귀 주제에 굴러오는 수레바퀴에 꼿꼿이 머리 쳐들고 대든다는 뜻의 전자가 당찮은 오기에 초점을 맞춘 거라면, 후자는 수단과 방법의 무모함 쪽에 더 무게를 둔 수사학이다. 그야 어쨌든 둘 다 이성적이지 못하고 감정적인 순리부정의 오기를 비유한 것은 물론이다.
 대통령이 닷새 전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지명을 철회했다. 석 달 여 정치권을 달구고 국정을 절뚝거리게 만들어온 사안이다. 그동안 언론이 전해온 여론은 대통령의 `오기인사’라는 신조어였다. 그 난리에도 꿈쩍 않고 고집을 피우니 만들어낸 조어인데, 막상 여론에 굴복하여 오기를 접으니 이때에는 `오기가 꺾였다’고 비아냥이다. 수레를 향해 항거하는 사마귀의 운명인지, 바위를 향해 던져진 달걀의 팔자인지, 누구 말마따나 대통령 노릇하기도 참 힘들겠다 싶다. 그래도 제발 임기는 다 채우고 물러나야 할 텐데….
 정재모/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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