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넓은 호수에서 먹이를 찾아 유유히 헤엄하는 철새들을 바라보는 일은 낭만이다. 하지만 올해는 철새가 반갑지 않다. 조류인플루엔자의 원흉이란 혐의 때문이다.
엊그제 천안에서 또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확인되었다. 축사 위를 날던 철새의 분변에서 왔다는 추측이 유력하다. 철새는 이제 얄밉고 두려운 존재가 되고 있는 것이다.
조류인플루엔자 때문에 꺼림칙한 것이 시베리아에서 날아온 겨울철새만은 아니다. 바야흐로 우리사회 인간 철새도 보기에 구역질나는 군무를 시작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이 지리멸렬 상태로 들어서고 있는 가운데 그 당 소속 어떤 국회의원들은 벌써 민주당을 기웃거리는 모양이다. 적진이라 할 한나라당에 눈길을 주는 자도 있단다. 제만 먼저 살자고 염치고 눈치고 내팽개치고 배를 버리는 `침몰하는 배의 새앙쥐’ 이야기가 상기되는 현상이 지금 정치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다.
철새를 뜻하는 영어 낱말은 마이그레이션(migration)이다. 이동한다는 뜻의 동사 마이그레이트의 명사형이다. 마이그레이트에서 파생된 또 하나의 단어로 마이그레인(migraine)이 있다. `편두통(偏頭痛)’이다. 뇌의 한 부분을 송곳으로 쑤시듯이 아프다가 어느 시점에 아픈 부위가 철새처럼 이동하면서 괴롭히는 병이다. 정치판 인간 철새들은 이리저리 옮겨다니면서 이 당 저 당에 편두통을 일으킬 것이 뻔하다. 말하자면 인간 고병원성 바이러스로 경계해야 할 존재들이다.
정재모/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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