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담하는데 올해 어떠한 배우보다 제가 가장 힘들었어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요. 연말 시상식에서 `고생상’이 있다면 받아야겠습니다. 하하.”
배우 김주혁(41·사진)은 MBC `구암 허준’ 종영 소감을 묻는 말에 “죽다 살아난 기분”이라며 “사극은 다시는 하면 안 될 것 같다. 수염은 붙이기도 싫다”고 장난스레 손사래를 쳤다.
지난 3월 `오후 9시대 일일극’이라는 새로운 시간대를 개척하며 출발한 `구암 허준’은 어느덧 135회 대장정의 막바지에 다다랐다.
지난 24일 강남구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주혁은 드라마가 시작했을 때와 비교해 몸무게가 6~7㎏나 줄어 있었다.
무더운 여름, 세트보다 야외 촬영이 많은 사극을 일일극으로 소화한다는 것은 그의 말을 빌리면 `상상 이상의 중노동’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극 초반 3-4개월은 한 달에 하루 정도밖에 쉬지 못했어요. 제 스케줄 표를 보면 황당하실걸요?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들어가 있으니까요.”
그는 “마지막 1-2개월은 정신력으로 버티기에도 버거웠다”며 “매일 아침 `오늘만 버티자’고 스스로 다짐했다”고 되돌아봤다.
`구암 허준’은 지난 1999년 MBC 월화극으로 방송돼 최고 시청률 63.7%를 기록한대히트작 `허준’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당시 극본을 집필한 최완규 작가가 다시 펜을 들었다.
그런데 김주혁의 전작 역시 고려 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 `무신’. 당시에도 갖은 고생을 한 그는 종영 소감으로 “다시는 사극을 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을 한 바있다.
“다른 사극 제안이 들어왔을 때는 절대 하지 않겠다고 했어요. 이번엔 허준이어서 한 거죠. 이번이 아니면 제 인생에 다시는 허준을 연기하지 못할 것 같았거든요.”
김주혁의 아버지인 탤런트 고(故) 김무생(2005년 작고)도 1975년 일일극 `집념’에서 주인공 허준을 연기한 바 있다. 그렇기에 허준이라는 배역은 그에게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
“아버지 때문에 포기하지 않은 거죠. 그만큼 진중하게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요.”
극 중 허준은 대중의 뇌리에 자리 잡은 이미지처럼 `인생의 교과서’같이 올곧은 인물이다. 엄격했던 아버지 아래에서 자란 김주혁과 닮은 점이 있어 보인다.
“저는 행동할 때 어떤 `선’을 넘지 못하는 아이입니다. 그전에 멈추는 스타일이죠. 배우로서 좋은 점은 아닌 것 같아요. 연기할 때는 `갈 데까지 가봐야’ 하니까요.”
그는 “이 점에서 스스로 벗어나고 싶어서 배우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며 “그만큼 촬영 현장과 연기는 즐겁다”고 덧붙였다.
드라마는 허준이라는 `흥행 보증수표’를 앞세워 일일 사극이라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했지만, 고정 시청층이 탄탄한 KBS 1TV `뉴스 9’와 맞붙는 불리한 시간대 등의 탓으로 시청률이나 화제성 면에서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만족하는 점도 있고, `왜 하필 이 시간대일까’하고 아쉬운 점도 있죠. 저는 도전정신은 별로 없거든요. (웃음) 그래도 이 정도 일궈냈다는 것에 대해 내부에서는 만족감이 있다고 하던데요.”
올해 마흔한 살인 김주혁은 아직 미혼이다. 연애와 결혼에 대해 조심스레 물었더니 “결혼을 하기 싫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 나이가 드니 자신감이 줄어든다”는 솔직한 대답이 돌아왔다.
“쉬는 날은 정말 외롭죠. 그래서 혼자 차를 몰고 나갑니다. 예전에 살던 강남구청 근처 제과점에 들려 커피와 빵을 사서 차 안에서 3시간 `바짝’ 대사를 외우는 습관이 생겼어요.”
김주혁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올해는 쉬어야 할 것 같다”면서도 “빨리 현대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배우는 쉬는 게 아니라 다른 작품에서 에너지를 얻는 게 `힐링’이죠. 현대물에서 마음껏 놀아보고 싶어요. 좀 짧은 작품으로요. 하하”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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