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으로부터 버림받고 상처받은 바리데기들의 戀歌
  • 이경관기자
세상으로부터 버림받고 상처받은 바리데기들의 戀歌
  • 이경관기자
  • 승인 2014.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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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연가집… 강은교 지음 l 실천문학사 l 111쪽 l 8000원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를 찾아 길을 떠난다// 누구는 생이라 하고/누구는 악수라 하고/누구는 길새라 하고/누구는 혁명이라 하고/누구는 봄비 소리라 하고/누구는 항구라 하고/누구는 음악이라 하고/누구는 금장초라 하고//(…)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를 찾아 길을 떠난다// 너는 무엇이라고 할까/ 너는 너라고 할까”(`단어’ 부분)
 올해로 등단 46년을 맞는 한국 시단의 원로, 강은교 시인이 최근 시집 `바리연가집’을 펴냈다.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부모와 세상으로부터 버림받고 도처를 헤매는 바리데기 이야기를 통해 개인적 삶의 아픔과 시대의 고통을 노래한다.
 “가끔 그런 곳을 생각한다/ 바리가 아비어미의 입술에 등꽃빛 숨살이 가지를 얹고, 바리가 아비어미의 입술에 등꽃빛 살살이 가지를 얹고, 바리가 아비어미의 가슴에 방울방울 약수를 춤추게 하는 등꽃빛 상여 위, 둥근 지붕이 거기 있는”(`둥근지붕’ 부분)
 `바리’는 시인의 시 세계를 관통하고 있다. 시인은 자신의 분신인 바리를 현대의 거리로 데려다 놓는다. 터벅터벅 걷는 바리의 발걸음은 특유의 리듬을 만들어 낸다.
 “가끔 그리로 오라, 거기 빵들이 얌전히 고개 숙이고 있는 곳, 황혼이 유난히 아름다운 곳, 늦은 오후면 햇살 비스듬히 비추며 사람들은 거기서 두런두런 사랑을 이야기 한다/그러다 내다본다, 커다란 유리창으로 황금빛 햇살이 걷는 것을, 그러다 듣는다, 슬며시 고개 들이미는 저물녘 바람 소리를”(`혜화동-어느 황혼을 위하여’ 부분)
 바리는 `아벨서점’과 `혜화동’ 등 젊은 시절 시인이 걸었던 거리를 걷는다. 그곳은 시인의 젊은 날 사랑과 혁명의 열기로 가득했다. 시인은 바리에게 자신의 추억을 선물함으로서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서류의 빈칸을 채워나가다가/ 변호사는 그 남자의 직업란에 이르러/ 무직이라고 썼다/ 그 여자는 항의하였다, 그는 무직이 아니라고, 시인이며 꽤 유명한 민주 운동 단체의 의장이었다고/ (…) / 그들은 요약되었다, 한 장의 이혼장으로/ 사유는 그 남자의 무직, 아니 무능”(`시(詩), 그리고 황금빛 키스’ 부분)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세상을 떠난 남편을 추억하는 시를 여러 편 실었다. 시인은 문학적 동지였던 그가 엄혹한 시대에 휘청이는 모습을 안쓰러운 눈길로 바라본다. 그의 무능은 시대의 암울한 현실이 만들어 낸 지독한 슬픔을 대변했다.
 “오늘 석 달 치 항경련제를 처방받았으니 6월 22일까지 나의 목숨은 유예되었다//(…)// 경련은 나의 스승, 나의 시, 나의 마지막 첫사랑”(`나의거리-강은교 씨를 미리 추모함’ 부분)
 시인은 평생 자신을 괴롭혀온 몸의 경련, 그 고통이 있음으로 살아있음을 느낀다. 시인에게 살아있음은 곧 시를 씀으로 연결되고 경련은 그녀에게 시를 쓰는 원동력이 된다. 
 자신을 버린 부모와 세상에 원망 대신, 내미는 따뜻한 손길은 바리 자신이 원초적인 아픔에서 벗어나 구원을 갈망했기 때문이다.
 최동호 시인은 추천평에서 “가장 낯익은, 그러나 간절한 선율로 신을 부르는 그는 `우리들의 모든 슬픔이 우리를 떠나게 하시라’는 인간의 절절한 염원을 노래한다”고 말했다.
 “눈물이 눈물의 자식을 낳아/ 퍼덕퍼덕 눈물의 자식을 낳아// 마치 흐르는 물을 꼭 움켜쥐고 있던 자갈들처럼, 마치 흙의 주름 사이에 슬며시 켜지던 번개들처럼// 흙이여, 네 잔등에 업히는 소멸들이여/ 흑흑 흐느끼는 탄생들이여, 부활들의 질주여// 눈물이 눈물의 자식을 낳아/ 퍼덕퍼덕 눈물의 자식을 낳아”(`흙’ 전문)
 강 시인이 읊조리는 바리의 노래는 보편적인 우리들의 사랑, 즉 삶의 노래로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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