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수한 `혼자’가 모여 만든 `우리’ 모두의 이야기
  • 이경관기자
무수한 `혼자’가 모여 만든 `우리’ 모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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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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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좋은 사람-정이현 지음 l 마음산책 l 198쪽 l 1만2000원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그때껏 나는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나는 아무도 없는 곳에 누워서만 울 수 있는 어른이 됐다.”(70쪽)
 빽빽한 빌딩 숲 사이로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 밤이면 화려한 불빛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술 한잔에 기대어 흐느끼는 도시의 풍경. 정이현 작가는 그 풍경 속에 살아가는, 어쩌면 너무나도 쓸쓸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단편소설보다도 더 짧은 11편의 작품에 담았다.
 짧은 소설집이라고 붙여진 정 작가의 `말하자면 좋은 사람’은 혼자 밥을 먹고, 혼자 길을 걷고 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정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내가 사는 도시는 수십만 개의, 좁고 더 좁고 더더 좁은 골목들로 이루어진 곳이다. 그 골목을 혼자 걷고 있는 사람에 대하여, 살짝 웅크린 어깨와 보풀이 일어난 카디건과 주머니 속에 정물처럼 가만히 들어 있는 한쪽 손에 대하여 쓰고 싶었다. 그들이 잠시 혼자였던 바로 그 순간에 대하여”라고 썼다.
 소설집의 첫 작품인 `견디다’는 대학 4학년 겨울방학을 위태롭게 보내고 있는 `그녀’의 이야기다. 그녀는 열두 번째 이력서를 쓴 끝에 가정방문 교사로 취직 하지만 일하기 위해서 150만원어치의 교재를 사야 한다는 소리를 듣고 난감해 한다. 그녀는 목줄을 풀어주며 `너 가고 싶은 곳으로 가’라고 말해도 떠나지 못하는 늙은 개 `이천이’처럼 가야할 곳을 정하지 못하고 방황한다.

 “그래도, 혼자가 아니라 다행이라고 그들은 동시에 생각했다. 시작이었다.”(91쪽)
 또 다른 소설 `시티투어’는 묵은해의 숙원 사업을 해결하려는 듯 12월 31일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하는 애인을 잊기 위해 무궁화호 1271 열차를 타고 S시로 떠난 여자. 그녀는 그곳에서 자신처럼 이별의 상처를 잊기 위해 S시를 찾은 정훈을 만나는 이야기다.
 “단지 태어난 해가 똑같다는 이유로 처음 보는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는 나이. 그럴듯한 이유도 없이 급히 마신 술에 취해 자정의 대학로 골목 한 귀퉁이에서 부둥켜안고 울 수 있는 나이. 그러다 권태로워지면 어디로든 훌쩍 도망가버릴 수 있는 나이. 누가 도망가버렸다는 풍문을 들어도 아랑곳하지 않을 수 있는 나이. 무책임이 아직은 용서되는 나이. 그 스물두 살이 우리에게도 있었다.”(144쪽)
 11편의 소설 속에는 길을 잃은 취업준비생, SNS 속에서 가짜의 인생을 살고 있는 중년 여성, 춥고 겁에 질린 사람이 자신뿐이라는 스물두 살, 뾰족한 모서리에 서 있는 것 같은 불안한 열여덟 살 등 누군가와 함께 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자신은 `혼자’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정 작가는 이들에게 `괜찮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외로움에 사무친 `혼자’인 또 다른 인물을 내세운다. 결국 우리네 인생은 무수한 `혼자’가 모여 `우리’를 만드는 과정이다. 정 작가는 때로는 `혼자’인 우리 모두에게 `당신들은 말하자면 좋은 사람’이라고 속삭인다.
 정이현. 마음산책. 198쪽.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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