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물적인 사회의 어제와 오늘, 통렬하게 파헤치다
  • 이경관기자
속물적인 사회의 어제와 오늘, 통렬하게 파헤치다
  • 이경관기자
  • 승인 2014.06.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양춘단 대학 탐방기 - 박지리 지음 l 사계절 l 388쪽 l 1만2800원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춘단은 자기 꼬리를 쫓는 동물처럼 복도 끝을 맴돌다, 마시지도 않을 음료수 자판기 주위를 서성이다, 문득 창으로 교정을 내려다보았다. 연두색 자전거를 타고 어딘가로 향하는 남학생, 벤치 아래 모여 앉아 웃고 있는 남녀 무리, 햇볕을 피해 책을 얼굴에 뒤집어쓰고 잔디에 드러누운 학생. 캠퍼스는 계절이 허락하는 따사로움을 사치스럽게 누리고 있었다. 춘단은 자기도 모르는 새 얼룩도 없는 창문을 물걸레로 쓱 쓸어내렸다.”(112쪽)
 상아탑의 권위가 무너졌다. 스펙에 몰두한 학생들은 전공과 무관한 토익에 몰두한다. 대학은 학생들에게 `꿈’이 아닌 `취업’을 강요한다. 대학은 더 이상 지성의 전당이 아니다.
 소설은 환상이 아니라 현실이라 주장하는 작가 박지리. 그녀의 세 번째 작품인 `양춘단 대학 탐방기’는 한결같이 안녕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어제와 오늘을 통렬하게 파헤치는 풍속소설이다.
 소설은 평생 시골에만 살던 65살 양춘단이 남편의 암수술 때문에 서울 아들집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시작된다.
 초등학교도 채 졸업하지 못했던 춘단이 대학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그녀의 신분은 용역회사에 고용된 청소노동자다.
 “네 평 남짓한 지하 컨테이너 휴게실. 햇살 넘치는 교정과는 한참 떨어져 있고 학생들 수백 명이 머리 위를 밟고 지나가는 소리가 우박 내리듯 들리고, 한여름에도 뼛속이 시리도록 춥고, 어둡고, (…) ” (97쪽)
 생계를 위해 일하는 동료 미화원들과는 달리, 대학이라는 공간의 상징성에 매료된 온 춘단은 그들과 어울리지 못한다. 대학에서 춘단을 숨 쉬게 하는 곳은 매캐한 냄새가 나는 지하 휴게실이 아닌, 캠퍼스가 한 눈에 들어오는 옥상이다. 그곳에서 그녀는 시간강사 한도진을 만나 나이를 초월한 우정을 나눈다.
 소설은 주인공 춘단과 춘단이 대학을 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뿐 아니라, 춘단의 부모와 춘단과 영일 부부, 아들 부부와 그 자녀의 이야기까지 사대의 곡절 많은 인생사를 노래한다.

 박 작가는 춘단의 시선을 통해 모순이 가득한 사회를 꼬집는다. 소설 속 대학은 하나의 작은 사회다. 무너진 상아탑의 권위와 부정부패가 만연한 교직원들의 행태는 대학의 현주소다.
 “춘단은 물어보고 싶었다. 어제까지 저 그림자 속에 놓여 있던 그 많은 팻말은 어디로 갔는지, 천 명의 서명을 받는다던 공책은 누가 가져갔는지, 이곳을 떠나선 갈 데가 없다고 외치던 사람들은 어디로 떠났는지. 그러나 대답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270쪽)
 미화원들은 시급을 4800원에서 4300원으로 깎으려 하고 어미 뻘 되는 자신들을 짐승처럼 대하는 새로 온 소장의 행태에 반발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억울한 심정을 편지로 써 대학 측에 전달한다. 그러나 돌아오는 건 자신들과는 관련이 없다는 이야기뿐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생계와 권리를 위해 파업에 들어가고 며칠간 이어졌던 파업은 경찰 투입으로 마무리 된다.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춘단은 살아남았다. 동료들이 떠난 자리는 또 다른 미화원들이 채웠다.
 “컴컴한 밤, 호수 앞에 선 젊은 사람. 겁나는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주머니에 두 손을 푹 찔러 넣고 태연하게 섰을 것이다. 아슬아슬하게 당겨진 양극의 줄, 고작 한 발짝으로 결정되는 삶과 죽음의 친밀함. 갖은 수모를 당하더라도, 바로 쳐다볼 수도 없는 더러운 일들이 눈앞에서 행패를 부린다 해도, 자신이 아니라 부모 형제를 위해 살기로 마음먹고 욕 한 번 하고 뒤로 물러선다면 그리 못 살 건 또 없지 않은가.”(284쪽)
 춘단과 우정을 나눴던 도진이 시간강사에 대한 대학 측의 부당한 대우에 좌절, 자살한다. 그가 호수 위에 떠오르고 며칠이 지났을까 그녀에게 그의 일기장이 배달돼 온다. 그녀는 일기장의 글을 대학 내 화장실 벽에 적으며 그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사람들에게 알린다. 그리고 그녀는 대학의 상징물인 코끼리 상을 매일 조금씩 망치로 두드린다.
 “눈을 한번 감았다 떠보니 그 위대한 코끼리가 폭격을 맞은 듯 와르르 내려앉고 있었고, 잠시 허공에 떠 있던 코끼리 얼굴이 무너진 몸을 따라 막 낙하하려는 찰나, 유골에서 피어나오는 뿌연 분진이 안개 같은 장막으로 코끼리의 마지막 모습을 가렸고, 잠시 후 막이 걷히고 나자 광장 한가운데에는 집채만 한 돌무덤이 생겼고, 코끼리에 막혀 있던 캠퍼스 저쪽의 풍경이 처음 드러나는 가운데 공중을 떠돌던 라일락 꽃잎이 돌무덤 위로 내려앉았다.”(373쪽)
 소설은 청소노동자의 투쟁과 시간강사의 자살, 자본의 노예가 된 대학과 입시 전쟁 등 현 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를 수면 위로 올려 공론화한다. 작가는 이러한 소재의 무게를 능청스러운 주인공의 독백과 대자보와 담화문 등 다양한 글쓰기 형식으로 덜어낸다.
 박 작가는 저자의 말에 “양춘단은 실제 인물이다. 김영일, 양호익도 실제 인물이다. (…)그리고 여기서조차 언급되지 못한 수많은 이들까지, 모두 실제 인물이다. 분명, 본 적 있을 거다.”라고 썼다.
 박지리. 사계절. 387쪽. 1만2800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기사
  • 경북 포항시 남구 중앙로 66-1번지 경북도민일보
  • 대표전화 : 054-283-8100
  • 팩스 : 054-283-5335
  • 청소년보호책임자 : 모용복 국장
  • 법인명 : 경북도민일보(주)
  • 제호 : 경북도민일보
  • 등록번호 : 경북 가 00003
  • 인터넷 등록번호 : 경북 아 00716
  • 등록일 : 2004-03-24
  • 발행일 : 2004-03-30
  • 발행인 : 박세환
  • 대표이사 : 김찬수
  • 경북도민일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북도민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HiDominNews@hidomin.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