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발품에서 '진정한 예술'이 꽃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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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발품에서 '진정한 예술'이 꽃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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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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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항의 연극계는 지금 변신 중이다.
 예술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편, 치열한 마케팅 현장에 발을 쑥 넣고 있다. 예술을 한다며 관객이 알아서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권위적인 모습과의 이별이다.
 작품은 예전보다 더 열심히 만들되 관객에게 다가가는 작업도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거듭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지역 극단들의 분투 현장을 들여다 봤다. 2명의 연극 연출가의 일상을 통해 열악한 지역 극단들의 모습을 조명해 본다.
 
  배우섭외서 무대연출까지
  재정과 인력 턱없이 부족
  제도적지원 `사랑티켓’절실

 연극은 종합예술이다. 연극의 기본 3요소(희곡·배우·관객)에 무대 디자인과 의상, 음악 등이 조화를 이뤄야 완성된다. 지역에서 작품 하나를 무대에 올리기 위해서는 배우 섭외부터 소품 제작까지 어느 것 하나 쉽게 완성되는 건 없다. 연극작품을 만들기 위해 일인 다역을 소화해 내는 극단 은하 대표 백진기씨를 따라가 봤다.
 지난 12일 오후 중앙아트홀(포항시 상원동). 백 대표의 폰이 울렸다. 연극 `그 여자의 소설’에 객원출연을 하기로 했던 배우 2명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무대에 설 수 없게 됐다는 통화다.
 백 대표는 “경륜을 가진 배우가 많지 않은 지역에서 각자의 사정에 의해 출연을 번복할 경우 심각한 상황이 초래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관립극단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 극단원들은 생계를 위해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매년 2~3작품에 출연하고 해외공연까지 준비한다는 것은 힘들 일”이라며 “배우 부족문제는 지역극단들의 공통적인 어려움”이라고 털어놨다.
 그래도 연극은 무대에 올려져야 하는 법. 배우를 수소문 했지만 헛수고다. 결국 대사를 대폭 손질하기로 했다.
 지난 18일 오후 7시30분, 배우들이 하나 둘 중앙아트홀로 모였다. 이날은 무대 디자인과 배역 분석 등 작품의 일차적 디자인 단계를 상의하는 자리.
 백 대표가 “자 이게 무대 디자인 평면도야”라며 연필스케치를 꺼냈다. 작품의 기능과 미를 고려한 백 대표의 아이디어다. 무엇보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야 한다.
 무대 디자인을 상의하던 연극배우 하지희(29)씨는 “극단에서 연기도 늘었지만, 무엇보다 내가 톱·못질을 잘하는 구나…하고 깨달았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백 대표 뿐 아니라 배우 스스로 무대를 만들기 때문. 자리를 한지 몇시간이 지나서야 대본 연습 시작. 백 대표의 연출 아래 대사를 읽으며 인물분석과 작품의 전체적인 빛깔을 정했다.
 내일부터는 스폰서를 구하고 포스터·현수막 제작을 위해 사진 스튜디오와 인쇄소를 방문해야 한다. 매일 저녁 연습과 연출작업은 기본.
 극단 대표가 배우 섭외와 연출을 비롯해 무대의 디자인, 소품부터 무대설치까지 막노동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가 뭘까. 백 대표는 “공연 기획은 온 세상이 무대고, 만나는 모든 사람이 관객이나 마찬가지다. 이렇게 고생해서 올린 연극을 보면 내 새끼 같아 매번 눈물이 난다”며 “지역 극단들의 어려움은 재정과 인력의 부족이다. 재정과 배우, 전문 스텝이 부족하니 나라도 나서서 몸으로 뛰어다닐 수 밖에 없다”고 애정을 나타냈다. 그는 “관객은 저렴한 요금으로 공연을 즐기고 연극인들은 작품에 매진할 수 있는 각종 제도가 마련돼야 할 것”이라며 “경북을 제외하고 전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사랑티켓’과 같은 제도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지방 연극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영락없는`연극외판원’신세
    포스터·전단지 일일이 붙여
   `기획’은`정성’ 늘마음에 새겨

 극단 난장(亂場)의 대표 진용진씨. 그는 오늘도 연극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인 `관객’유치를 위해 곳곳을 누빈다. 포항에서 극단 `난장’을 이끈지 15년. “남들은 공연 기획이라고 해서 품위 있고 고상할 줄 안다. 하지만 이렇게 험할 줄 알면 꿈도 꾸지 않을 것”이라며 “영락없는 `연극 외판원’”이란다. 그는 오늘도 열심히 발품을 판다.
 지난 23일 오전, 봄비가 내렸다. 군인도 비가 오면 실내에서 일한다는데, 혹시 꾀가 나지 않을까? “이런 날 찾아가야 효과 직방입니다. 비를 뚫고 갔는데 문전박대할 만큼 독한 사람 많지 않죠”
 요즘 준비하고 있는 작품은 `가시고기’ 와 `멧돼지와 꽃사슴’. 그리고 어린이 극단 나무의 `콩쥐팥쥐’를 돕고 있다. `가시고기’와 `콩쥐팥쥐’는 5월 울릉군 초청공연 작품으로 선정돼 걱정을 덜었지만, 4월말 계획 중인 `가시고기’ 와 `멧돼지와 꽃사슴’ 포항공연에는 최대한 단체 관람을 유도해야 한다.
 오전에는 현수막 붙일 곳을 섭외해야 한다. 전단지도 넣고 팸플릿도 꼬깃꼬깃, 초대권도 빠뜨려선 안 된다.
 지역자치 단체에서 제공하는 장소는 돈이 많이 들고 경쟁도 심하다. 어디든 시민들이 많이 다니는 거리의 건물주를 찾아 협의해봐야 한다. 스폰서를 받으면 더 좋다.
 차를 몰고 대이동에 도착했다. 첫 번째 만날 사람은 거리에서도 눈에 잘 띄는 건물주.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을 통해 이미 약속을 잡은 상태. 웬걸, 건물에 들어가니 보이질 않는다. 서둘러 휴대전화 연락. “아~ 그랬었나요. 어쩌죠, 저 지방에 내려와 있는데” 시작부터 허탕이다.
 진 대표는 “보통 건물주에게 현수막을 붙이고자 부탁하면 무시하거나 화를 내는 일이 종종 있다”며 “이렇게 자리를 피해버리는 경우는 양반에 속한다”고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물러날 순 없다. 이제부터 `포스터 도배질’이다. 이곳 저곳에 포스터와 전단지를 붙이고 뿌리기 시작했다. 포스터를 붙이는 사이 인쇄소와 목공소, 철물점 등을 들렸다. 무대 소품을 위한 재료를 구입하는 것.
 벌써 방문한 곳만 5곳이 훌쩍 넘고, 걸음걸이로도 만보는 족히 될 듯 싶다. 왜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할까. 진 대표는 “연극보다 더 재미있는, 뒤풀이 땜에 연극하는지도 모르겠다”고 너스레웃음을 짓더니 안도현 작가의 `연어’로 마음을 대신했다.
 이어 “`기획’은 `정성’이다. 아무리 디지털 세상이라도 컴퓨터나 바라보며 잔머리 굴리는 기획보다 부지런히 뛰는 것이 중요하다”며 “온·오프라인에서 사람을 직접 만나는 것보다 더 좋은 마케팅은 없다”고 말했다.
 시간은 이미 오후 7시. 이러다 극단 난장의 연습시간에 늦을 판. 시간에 쫓겨 할 수 없이 발길을 돌렸다. 연습이 끝나면 밤새 무대만들기에 돌입해야 한다. /남현정기자 nh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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