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의 입학식을 추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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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의 입학식을 추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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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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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옥 위덕대학교 자율전공학부 교수
[경북도민일보]  인생의 소중한 장면은 때론 한 장의 스틸컷으로 남기도 한다. 40년 전 대학 입학식이 내겐 그렇다. 그 장면은 내게 아름답기도 하지만 먹먹하기도 하다.
 내가 대학생으로 입학했던 때가 어느 덧 40년전. 1975년이다. 우리나라가 지금보다 훨씬 가난하던 시절이었지만 그 중 우리집은 특히 더 가난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갑자기 기운 가세 때문에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도 공납금을 제 때 내본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 진학은 원하는 학교가 아닌, 장학금을 많이 주는 학교를 선택해서 갈 수밖에 없었다. 3학년 내내 장학금을 받아 학비에 보태면서도 대학의 꿈을 접지 않았다. 부모님은 어려운 형편에도 자식은 반드시 대학까지 보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었다. 그 덕분에 우리 3남매는 모두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다.
 우리 남매의 대학진학과 관련, 친척들의 반대가 심했다. 먹고살기도 빠듯한 형편, 월세방에 살면서도 이자 비싼 일수빚을 얻어 자식들 공부시키는 우리 부모님을 이해하지 못했다. 내 또래의 여자아이들을 초등학교를 졸업시키자마자 공장으로 취직시켜 집안형편이 펴진 친척과 이웃들의 힐난은 매우 심했다. 그러나 딸이라도 공부시키면 얼마든지 제몫을 하리라는 부모님은 확고했다. 내가 열심히 공부를 했던 원동력에는 부모님이 있었다.
 내게 대학의 선택지는 매우 좁았다. 등록금이 상대적으로 싼 국립대학교가 아니면 안됐다. 당시 지방의 국립대학교는 입시경쟁률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았다. 더욱이 오빠가 대학생이었기에 집안 형편은 더욱 어려운 상황이었다.
 아버지는 혹시 2년제 교육대학 진학은 어떠냐고 어렵게 입을 뗐다. 가난한 집안형편도 형편이지만 경쟁률 높은 대학에 지원했다가 떨어져 실망할지도 모를 딸을 염려한 말씀이었지만 철없던 나는 아버지의 말씀을 일언지하에 거절하면서 매몰차게 대답했다.
 “4년제 아니면 안 가겠어요. 대학 떨어지면 후기 대학도 안가고, 재수도 안하고 바로 공무원 시험 쳐서 집안 살림 보탤게요. 첫 등록금만 마련해 주면 아르바이트해서 등록금 마련하고 집에 손 안 벌릴게요”
 어떤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을 거냐고 조심스럽게 묻는 아버지께 또 대못을 박는 대답을 했다.
 “요새 잡지 보면 여대생들이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 자리 많다고들 하던데요, 술집 같은데”
 그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정말 사정없이 나를 쥐어박고 싶은 심정이다. 물을 끼얹은 듯한 분위기를 깨고 오빠가 나를 지지해 주었다. 내가 대학을 가고, 오빠는 군대를 자원입대해서 등록금부담을 덜 수 있다고 했다. 내가 대학시험을 치는 날 오빠는 군대를 갔다.
 아! 난 얼마나 이기적인 딸이자 동생이었던가.
 어렵게 가족들의 동의를 얻은 후, 고등학교 담임선생님과 삼당 후 원하는 대학에 입시원서를 냈다. 나는 12대 1이라는 놀라운 경쟁률에도 원하는 대학의 학과에 합격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입학금 걱정이 앞섰다.
 어려운 상황, 주위는 깜깜했지만 그래도 빛은 있었다. 대학 교수님이 추천해준 가정교사 자리로 첫학기 등록금을 해결할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나는 대학생이라는 이름을 달 수 있었고 나의 입학식 날은 우리 집안의 잔치였다. 나의 대학진학을 그렇게도 반대했던 큰아버지와 이모도 입학식에 와 축하해주셨다. 그날 함께 찍은 입학기념 사진 속 스무 살의 나는 수줍음과 설레임이 교차 하는 모습이다.
 지난주에 우리 대학이 입학식을 가졌다. 2015학번 새내기들의 풋풋한 모습을 보면서 40년 전의 나의 새내기 시절이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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