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을 지키는 ‘감성 근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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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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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삼부작 중 두 번째

 

말하다
김영하 지음 l 문학동네 l 252쪽 l 1만2000원

 “스펙 쌓기도 바쁘고, 그 와중에 돈도 벌어야 되고, 그런데 왜 소설을 읽을까요? 크게 도움도 안 되잖아요. 그런데도 힘들게 일하고 집에 돌아와서 책을 보려고 노력하고, 제가 진행하는 팟캐스트도 듣기도 한단 말이죠. 그건 자기 안에 남아 있는 인간다움, 존엄을 지키기 위한 거라고 생각해요.”
 ‘왜 소설을 읽을까’에 대한 소설가 김영하의 답변이다.
 최근 출간된 ‘말하다’는 김영하가 데뷔 이후 지금까지 해온 인터뷰와 강연, 대담을 엮은 일종의 에세이다. 지난해 출간된 ‘보다’와 향후 출판될 ‘읽다’의 교량 역할을 하는 에세이 삼부작 중 두 번째 책이다.
 글 읽기와 글쓰기의 즐거움, 저성장 시대에 청춘이 가져야 할 자세, 지적인 훈련을 통해 체화할 수 있는 ‘감성 근육’의 중요성, 한국 문단에 대한 진단, 자기 해방으로서의 글쓰기 등 다양한 주제의 강연과 대담이 이어진다.
 김 작가는 책에서 읽기의 중요성을 유독 강조한다. 경험도, 주변 사람도 아니라 “오직 책만이 한 사람을 작가로 만든다”는 다소 과장된 주장까지 할 정도로 읽기는 작가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종일 책을 읽지요. 매일 조금씩 글을 쓰고요. 그리고 사회적인 접촉은 아주 최소화되어 있습니다.”(103쪽)
 청춘 시절에 기울였던 술잔, 폭넓은 교우관계도 나이가 들면서 점점 그 의미가 퇴색한다. 심지어 ‘그때 좀 더 읽고 쓰는데 시간을 투자할 걸’이라는 후회까지 밀려올 때도 있다.

 “문학의 본질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대화예요. 그런 대화에 맛을 들이면 현실의 인간과의 대화를 오래할 수 없게 돼요. 더 근사한 게 있는데 시시하게 뭘 굳이 이야기하죠?”(82쪽)
 고전 소설의 뿌리, 이를테면 ‘오이디푸스 왕’같은 그리스비극처럼 하루 동안에 몰락하는 사람의 이야기에 흥미가 많다는 김영하는 “새로운 이야기”보다는 “늘 오래된 이야기를 자기 버전으로 다시 쓰는데 흥미를 느낀다”고 한다.
 그러나 고전적 이야기라도 당대의 현실이라는 새 옷을 입어야 한다. ‘현실과 사회’라는 풍화작용 없이, 삶의 밑동을 건드리는 울림 있는 소설이 나오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사회를 바라보는 안목이 중요할 텐데, 대체로 저자의 시각은 비관적이다.
 “예전보다 사회가 가지는 희망의 총량이 많이 사라졌어요. 우리 사회가 문명보다는 야만을 향해 조금 더 움직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약자를 존중하고 사회적 계약을 준수하는 것이 문명이라면 그 반대쪽으로 많이 움직인 것 같다는 거죠.”(11쪽)
 김영하는 점점 부박해지는 사회분위기 속에서 청춘들에게 “비관적 현실주의를 가지라”고 조언한다. “대책 없는 낙관을 버리고, 쉽게 바꿀 수 있다는 성급한 마음을 버리며, 냉정하고 비관적으로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현실주의에 두지만, 삶의 윤리는 개인주의에 두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남과 다르게 생각하는 것, 남이 침범할 수 없는 내면을 구축해야 타인의 의견에 쉽게 휘둘리지 않기 때문이다.
 문학관과 청춘에 대한 제언,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 이외에도 다양한 이야기가 책에 포함돼 있다. 연탄가스를 마시고 10세 이전의 기억이 실종된 어린 김영하와, 토악질과 입영 전야와 가물가물한 첫 사랑의 기억이 숨 쉬는 청춘시절의 그와, 이젠친구와 술잔을 기울이기보다는 집에서 책이나 읽는 중년 김 작가의 변화상을 어렴풋이나마 모두 관찰할 수 있다.
 ‘구어’로 이뤄진 에세이기 때문에 페이지가 술술 넘어간다. 하고자 하는 말을에둘러가는 소설과는 달리 인터뷰나 강연 내용을 담았기에 전달하려는 메시지도 명확하다. 책을 고를 때, 처음 접하는 저자의 책일 경우 “작가의 관상을 눈여겨 본다”는 저자의 독특한 시각도 눈길을 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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