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의 날에 생각하는 기사 속의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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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의 날에 생각하는 기사 속의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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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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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재모
[경북도민일보]  올해 신문의 날 표어는 ‘정보가 넘칠수록 신문은 더욱 돋보입니다’이다. 아닌 게 아니라 정보 홍수시대에 독자들이 진정 목말라 하는 건 믿고 볼 수 있는 뉴스이다. 이런 뉴스를 전달하는 데 있어 가장 신뢰받는 매체가 신문일 것이다. 이 같은 표어를 곱씹어 보면서 새삼 신문의 책임과 품위 등을 위해 제정한 신문의 날 의미를 되새겨 보게 된다.
 독자의 한사람으로서 올해 신문의 날에 생각해보고 싶은 것은 익명(匿名)이다. 기사에 등장하는 사람을 김모씨, 이모씨로 쉽게 처리해버리는 그 ‘편리한 익명’ 말이다.
 흔히 기사(記事)는 역사(歷史)라고 한다. 사실의 기록이 기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사 속의 인물은 원칙적으로 실명으로 적어야 옳다. 그래야만 읽는 이에게 믿음을 준다. 다만 실명 원칙에는 몇 가지 예외가 있다. ‘무엇이 어떻다’는 내용을 전달할 가치는 크지만 언급되는 당사자의 명예훼손과 사생활 침해가 우려될 경우다. 이 경우를 제외하면 기사작성에서 인물은 가급적 실명으로 적어야 한다.
 두루 알고 있듯이 기사에서 허용되는 익명은 제한적이다. 성범죄 피해자, 수사 또는 심리 중인 형사사건의 피의자, 형사사건 등 좋지 못한 일에 얽힌 미성년의 피해자와 피의자 등 몇 가지가 실명을 숨겨줘야 하는 경우다. 이마저도 국가·사회에 영향을 끼칠 만한 공인일 경우 명예와 사생활 보호에 우선하여 실명보도를 해도 된다는 게 통설이다.
 현재 학계 법조계 언론계 모두가 그 통설에 따르고 있다. 그만큼 기사 작성에서 실명 표기는 중요하다.
 그런데도 요즘의 기사들은 어떤가. 최근 한 메이저신문의 사회면 ‘지옥철 9호선…’제하의 르포기사 일부를 보자. ‘밖에서 사람들이 밀 때마다 열차 안에선 신음이 들렸다. 김모(64·회사원)씨는 “사람들이 너무 밀착하니 괴롭다. 정말 죽을 맛”이라 했다. 김모(23)씨는 “분당선보다 9호선에 사람이 훨씬 많은 것 같다”고 했다.
 익명 처리를 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어 보이는 코멘트를 숨기는 이유는 뭘까. 요즘 신문엔 이런 예가 넘쳐난다. 쓸데없는 익명이 남발되면 독자의 의심을 사게 된다. 기자 자신의 생각을 객관적인 것인 양 포장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런 기사작성 행태가 기사의 신뢰도를 떨어뜨린다는 점이다. 인터넷과 SNS 시대를 맞아 가뜩이나 인기가 떨어진 신문을 더더욱 외면 받게 만들 것이란 사실이다.
 수사 중인 사건 사고기사도 아니요, 자칫 억울하게 개인의 명예를 손상시킬 수 있는 경우도 아닌데 그저 박모씨 아니면 김모씨로 처리해버리는 것을 너무 흔히 보게 된다. 심지어는 담담한 풍경 묘사 같은 데서 경관을 찬탄하는 데에도 ‘모씨’는 유감없이 나타난다. 아무리 봐도 개인의 명예가 훼손되는 걸 염려하거나 사생활을 존중하고 배려한 익명은 아니다. 취재 부실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기사 마지막에 통상 따라 붙는 한마디 코멘트의 주인공은 예외 없이 ‘관계자’다. ‘… 이에 대해 한 관계자는 “000000”라고 말했다.’는 식이다. 물론 ‘관계자’란 이름으로 발언자를 숨겨야 할 때가 있다. 내용에 따라 예상되는 발언자의 불이익과 난처한 입장을 고려해 줘야 할 경우가 있을 테니까. 그러나 그러한 때가 아니라면 ‘관계자’ 운운은 존재하지 않은 발언의 조작일 가능성이 크다. 조작 냄새가 나는 기사 속 익명은 그 기사 전체의 신뢰감에 치명상을 준다.
 있으나마나 한 코멘트라도 꼭 덧붙이고 싶다면 실명을 적기 위해 노력할 일이다. 하다못해 지인에게라도 전화를 걸어 취지를 설명하고 의견을 묻거나 동의를 구한 뒤 그의 이름을 빌리는 성의라도 가져야 한다. 그래야 기사에 한발 가까이 다가간 기사가 될 수 있다. 기사 작성에 그 정도의 노력도 없이 상상으로 얻는 글이라면 그 가치는 제로다. 대충 아무 성씨나 하나 써 넣고 괄호 열어 내키는 대로 나이와 지명(地名) 하나 표기하면서 독자의 신뢰를 바란다면 곤란하다.
 반복하는 말이지만 기사를 쓰는 일은 역사를 기록하는 것만큼이나 무거운 일이다. 지난날 기자가 사회적으로 존경과 대우를 받았던 때가 있었다. 그것은 사실을 정직하게 기록하는 사람이란 믿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일선 기자나 데스크들은 오늘날 너무 쉽게 남발하는 익명이 초래할 신뢰 추락을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익명의 남발과 신문의 품위를 신문인들 모두가 진중히 염려해보는 올해 신문의 날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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