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봄에게 무어라 말하지 못하고 눈물을 삼키다
  • 이경관기자
가는 봄에게 무어라 말하지 못하고 눈물을 삼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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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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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철 시인 열번째 시집… 경험 녹아든 표제시 등 68편

 

금정산을 보냈다
최영철 지음 l 산지니 l 142쪽 l 1만1000원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언제 왔는지 모를 봄이 가고 있다. 활짝 핀 꽃들은 어느새 제시간을 다해 사그라져 간다. 가는 봄에게 무어라 말하지 못한 우리들은 속으로 서럽게 눈물을 삼킨다. 그렇게 계절처럼 사람도, 사랑도 떠난다.
 최영철 시인의 열 번째 시집 ‘금정산을 보냈다’. 총 68편의 시가 수록된 이번 시집에는 생성과 파멸의 연속, 환희와 비명의 공존하는 삶의 눅진함에 대해 그린다.
 “언제 돌아온다는 기약도 없이 먼 서역으로 떠나는 아들에게 뭘 쥐어 보낼까 궁리하다가 나는 출국장을 빠져나가는 녀석의 가슴 주머니에 무언가 뭉클한 것을 쥐어 보냈다 이건 아무데서나 꺼내 보지 말고 누구에게나 쉽게 내보이지도 말고 이런 걸 가슴에 품었다고 함부로 말하지도 말고 네가 다만 잘 간직하고 있다가 모국이 그립고 고향 생각이 나고 네 어미가 보고프면 그리고 혹여 이 아비 안부도 궁금하거든 이걸 가만히 꺼내놓고 거기에 절도 하고 입도 맞추고 자분자분 안부도 묻고 따스하고 고요해질 때까지 눈도 맞추라고 일렀다 (…) 그 놈의 품은 원체 넓고도 깊으니 황망한 서역이 배고파 외로워 울거든 그걸 조금 떼어 나누어줘도 괜찮다고 일렀다 그렇게 쓰다듬고 어루만지며 살다가 이곳으로 다시 돌아올 때는 무엇보다 먼저 그것부터 잘 모시고 와야 한다고 일렀다 무엇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네가 바로 그것이라고 일렀다 이아비의 어미의 그것이라고 일렀다”(‘금정산을 보냈다’ 중)
 특히 표제시 ‘금정산을 보냈다’는 시인의 경험이 녹아든 시다. 대학 졸업 후 100여 번 낙방 끝에 어렵사리 한 기업에 취업했다. 요르단에서 근무한다는 조건으로. 시인은 그런 아들을 말리지 못했다. 그럴 명분도 그럴 여건도 되지 못했다. 시인은 아들을 떠나보낸 뒤, 집으로 돌아와 이 시를 썼다. 시인이 덤덤하게 써 내려간 단어 하나하나가 내 아비의 마음과 같아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그는 현대시가 가진 난해함을 벗어던지고 ‘공감’을 단 하나의 강력한 무기로 내세웠다. 마음을 어루만지는 그의 시를 읽고 있노라면 저릿하던 마음 한구석에 반창고를 붙인 듯하다.
 그는 삶이란 만남과 헤어짐, 기쁨과 슬픔의 연속이라고 그저 하루하루 견디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시집은 다른 시집과 달리 해설 대신 대담을 실었다. 최 시인과 호형호제(呼兄呼弟) 하는 최학림 부산일보 논설위원과의 가감 없는 대화는 이 시집의 또 다른 매력이라 할 수 있다.
 “가긴 꼭 가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어디로 가시려는지, 뒤를 한번 돌아봐 주면 안 되는지 물었습니다. 가는 길이 춥지는 않으신지, 그 말은 왜 끝내 안 해주셨는지 물었습니다. 내일도 어제처럼 바람 불고 비 오는 날인지, 갈 때는 그렇게 아무 말도 않는 게 좋은지 물었습니다. 어제가 해 맑고 쨍한 날이었는지, 내일이 더 그런 날인지, 이제 그만 옆구리 아프지 않아도 되는지, 처방전 끊지 않아도 되는지 물었습니다. 거기도 꽃 지고 있는지, 눈물 한 방울 촉촉이 꽃 피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때 박은 가슴의 대못은 언제 빼주시려는지 물었습니다. 가실 때는 미처 그러하였으나 다시 오실 때는 미리 전갈이나 해주시려는지 물었습니다.”(‘문상’ 전문)
 봄 한 철을 위해 사력을 다해 폈던 꽃잎이 바람에 졌다. 영국의 시인 T.S엘리엇은 ‘황무지’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했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어나게 하고 추억과 정욕을 뒤섞어 버리며 잠든 뿌리를 봄비로 뒤흔드는 4월이 흐르고 있다. 100여 년 전 태어나 살다간 영국의 시인과 김해 촌락에서 살고 있는 한 시인은 시로써 소통하고 있다. 아스라이 져가는 꽃잎들이 아린 것은 아마도 그것이 우리의 숙명이기 때문이 아닐까. 쓸쓸한 봄바람에 꽃잎이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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