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사 ‘甲질’
  • 김용언
축사 ‘甲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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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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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언
[경북도민일보]  결혼식에서는 누구보다도 신부가 돋보여야 한다. 하객들의 눈길도 온통 신부에게 쏠린다. 신부가 활짝 웃는지, 눈물짓는지 눈여겨 본다. 때로는 짓궂은 사회자의 주문에 어떻게 응대하는지도 흥미롭게 지켜본다. 그러니 들러리가 신부보다 예쁘면 안 된다는 우스개가 그럴싸하게 들리기도 한다. 어느 모임에나 ‘신부’는 있다.
 국어사전을 펼쳐본다. 들러리에는 결혼식과 관련한 뜻풀이가 나열돼 있다. 그 뿐인가. 또 다른 뜻풀이가  눈길을 더 잡는다. “어떤 일에 주된 역할을 하지않고 곁다리 노릇을 하다” ‘들러리=곁다리’란 소리다. “ 주가 되는 것이 아닌 물건이나 사람. “곁다리는 이렇게 풀이돼 있다. ‘곁’자가 붙어서 제대로 된 대접을 받는 것은 없는 것 같다” 곁가지, 곁방, 곁동자치, 곁방살이, 곁방석…. 모두 늘어놓자면 한참 가야 한다.
 KTX 포항직결선이 개통된 지난달 31일 포항에서 이 곁다리 논쟁에 기름을 부은 일이 벌어졌다. 포항의 숙원사업이 성취된 이 기쁜 날에 이강덕 포항시장이 곁다리 신세가 돼 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축사 한마디 못한 채 남의 축사에 손뼉만 치고 있었다.
 포항시장은 53만 시민의 ‘얼굴’이다. 그 ‘포항의 얼굴’이 물을 먹고 있는 장면을 지켜보는 시민들의 속은 끓어올랐다. 다른 곳도 아닌 ‘안방’에서 당하는 수모였으니 시민들이 왼새끼를 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식장에서 축사를 귀담아 듣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렇다고 아주 듣지 않는 것도 아니다. 들으나마나 덕담이니 두귀를 쫑끄리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렇다해도 누가 나서서 마이크를 잡았는지는 기억한다. 더러는 그 덕담의 일부라도 기억하는 사람도 있다. 더구나 이 날은 포항이 소원풀이를 하는 날이 아니었던가. 포항시장의 입에서 짧은 몇마디 인사라도 흘러 나왔더라면 시민들의 마음은 한결 편해 졌으리라. 연설은 길다고 환영받는 것도 아니다.
 영국 총리 처칠의 축사가 유명한 사례로 꼽힌다. 그가 모교 졸업식 축사로 한 말은 달랑 세 마디 뿐이다. “Never give up” 그는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는 이 말을 세번 되풀이하고 단을 내려왔다고 전해 온다. 그랬어도 그의 축사는 백 마디 미사여구(美辭麗句)보다 느낌이 더 짙다.
 포항 KTX 직결선 개통식의 의전절차는 국무총리실이 주물렀다. 이완구 국무총리가 참석하는 개통식인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절차가 국무총리 위주로 짜여져 돌아갔다. 지역출신 국회의원 한 사람은 축사 대열에서 처음부터 제외됐으나 막판에 합류했다고 한다. 필경 국회의원 ‘끗발’이 먹혀들어간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이 ‘끗발’마저 없는 포항시장은 아픈 가슴을 조용한 미소로 위장할 수밖에 없었다.
 서울에서 ‘높은 사람’들이 줄줄이 내려오면 포항시장은 ‘쯤’밖에 안되는 게 상례인 것 같다. 전임 박승호 포항시장도 똑같은 수모를 당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박 전 시장은 2011년 포스코 파이넥스 3공장 기공식에서 단상엔 오르지도 못하고 발파 버튼만 누른 것으로 들러리 역할을 다했다. 그리고는 성깔을 참지 못해 국무총리실을 향해 “지방자치의 근본도 모른다”고  닦아세웠다.
 똑같은 일이 또 벌어지고 보니 박 전 시장의 일갈이 아직도 유효하다 싶다. 국무총리실의 의전이란 게 화석(化石)처럼 굳어버린 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국무총리실이 총리를 우선 챙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지방에서 열리는 행사임을 감안했어야 했다.
 포항 직결선이라고 포항시민만 수혜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경북동해안 일대의 주민들이 모두 수혜자다. 그 숫자가 얼마인가. 총리실은 이 많은 주민들을 깔고 앉아 ‘甲질’을 한 꼴이다. ‘화석 의전’이 아닌 ‘탄성(彈性)의전’에 머리를 썼어야 했다. 제외됐던 국회의원의 끗발에 눌려 발휘했던 융통성을 말함이다.
 어느 야당의원은 ‘지방’이란 말을 쓰지말고 ‘지역’으로 대체하자는 법안을 발의했다. 그의 주장이 옳고 그름을 가리자는 게 아니다. 지역민의 의식이 그만큼 달라지고 있음을 감지하라는 소리다. 화석화된 사고방식으로는 지역민을 감싸안기 어렵다. 화석은 진열장 안에 넣어두기만 하면 되지만 그것을 어느 각도에서 바라보든 각자의 마음대로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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