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비 에비 이 세상
  • 김용언
에비 에비 이 세상
  • 김용언
  • 승인 2015.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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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언
[경북도민일보] 평생 친구가 메르스 와중(渦中)에 친상(親喪)을 당했다. 엎친 데 덮친다더니 친구는 호된 감기에 걸려 장례식장 대신 보건소로 발길을 돌렸다. “병원 문닫게 할 일 있느냐”는 강경 자세에 한 걸음 물러선 것이다. 이 ‘맏상주’는 아우들에게 장례를 맡긴 채 가슴으로 울었다. 지역신문을 보니 영양군 입암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진 모양이다. 이런 사례가 온 나라를 통틀어보면 어디 한 두건이겠는가 싶다. 메르스는 남의 일이 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제껏 듣도보도 못한 바이러스가 멀리 중동(中東)지방에서 날아와 온 나라를 휘젓고 있다. 이 바이러스는 메르스(MERS)라고 한다. 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의 첫 글자들을 모아서 이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우리말 ‘중동호흡기증후군’은 이래서 나왔다. 이 세 살바기 바이러스가 ‘의료선진국’이란 한국을 멋대로 농락하고 있다. ‘중동호흡기증후군’이란 색다른 이름에 겁먹은 듯 온 국민이 초긴장 상태에 빠져 있다. 정상회담을 하러 떠나야 할 대통령의 발목까지 붙들 정도로 심각하다. 작명이 잘못된 탓은 없나? 차라리 ‘중동 감기’정도로 눙쳤더라면 어땠을까 싶기까지 하다.
 우리는 지난 2002~2003년에도 중증급성호흡증후군을 겪은 일이 있다. 사스(SARS)라고 했다. 첫머리 두 글지는 ‘Severe Acute’였고 뒤의 두 글자는 메르스의 경우와 같다. 이때 피해는 지금보다 훨씬 많았지만 공포심만은 훨씬 덜 했던 것 같다. ‘고추장 체질’덕분인가 싶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엔 어째서 극심한 타격을 받아가며 숨죽여야 하는지 두고두고 연구 대상이다.
 메르스 탓에 뉴스의 관심권에서 잠시 벗어나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사드( THAAD)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다. 사드를 놓고 한국을 가운데 둔 미국과 중국이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시쳇말로 ‘절친’이 이런 저런 우리의 현실을 아파하며 ‘하늘’에 간구(懇求)하는 글을 썼다. ‘시(詩)를 기르는 농업인’을 자처하는 이 늦깎이 시인의 글 속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메르스와 사스는 사촌 간이라는데 사드는 사스와 몇 촌 간인가. 나라가 풍전등화, 백척간두인데 우리들의 마지막 희망인 젊은이들은 삼포에서 칠포로 갈 길을 못 찾고….”
 핵무기를 손에 들고 입이 귀에 걸린 북녘 수괴는 걸핏하면 미사일을 쏴댄다. 남한에 대한 힘자랑이다.
 지금 남한의 거리에서는 마스크 쓴 사람의 모습이 낯설어 보이지 않는다. 메르스 감염 예방용이다. 그 마스크에도 급수가 있다. KF80, KF94, N95는 돈이 있어도 사기 힘들다. 희귀상품의 반열에 이름을 올린지 이미 오래 됐다. 때문에 업자는 떼돈을 긁어 들였다는 소식도 들린다. 마스크를 남이 쓴 모습을 보면 ‘호들갑이 심하다’는 심사가 되는데 내가 쓰면 든든한 느낌이라고 한다. 희한한 세상이 돼버렸다. 주민이 헐벗고 굶주려도 핵무기를 가져야한다는 북한의 미사일과 메르스에 코가 꿰인 남한의 모습이 대비된다.
 지금 이 나라엔 기이한 현상이 당연한 현상처럼 돼버리고 있다. 병원 기피증이다. 너도 나도 병원 가기를 꺼린다. 병원에 가면 메르스에 걸린다는 인식이 뿌리 박히듯 해버린 탓이다. 한마디로 ‘병원? 에비 에비’현상이다. ‘에비’가 뭔가? 어른이 어린아이를 겁주는 말이 아닌가. 콧물만 흘러도 병원으로 달려가던 이 나라에서 병원기피라니 이 무슨 기현상인가? 골든타임을 놓치고 허둥대는 최상급 병원들에 대한 불신감이 그만큼 뿌리 깊어져 버렸다.
 그래도 한숨 돌릴 수 있는 여지는 있다. 메르스는 공기로 전염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바이러스는 변종이 아니라는 소식이다. 그렇다면 고삐는 잡히게 마련이다. 평생 낙타 구경하기 힘들고 낙타고기 한 점 입에 넣어본 일도 없는 사람들만 사는 나라에서 낙타가 꺼림칙하게 됐으니 이 또한 메르스 후유증의 하나다. 혹을 두개씩이나 달고 눈망울을 굴리는 순둥이 낙타가 기피동물이 돼버리다니 이 또한 이상하다. 100세 시대를 장담하지만 우리네 한살이는 짧다면 짧다. 그런데도 이 고해(苦海)엔 ‘에비 에비’가 너무 많다. 이를 이겨낼 면역력 또한 절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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