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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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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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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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명래 수필가
[경북도민일보] 유럽 여행에서 돌아오니 유난히 감자가 생각난다. 지난 며칠 동안 식탁에 감자가 없었던 적이 없었다. 감자를 많이 먹는 그들의 식생활이 그렇기는 하지만 나 역시도 감자요리가 좋았기에 즐겨 먹었다. 계절 탓인지 감자요리를 먹을 때마다 ‘감자꽃’이라는 나의 수필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에 감자를 즐겨 먹은 것은 아니었지만 감자밭에서의 사연이나 감자농사를 지었던 부모님, 그리고 감자를 많이 먹을 수밖에 없었던 궁핍이 있어 ‘감자꽃’과 같은 작품이 만들어졌다.
 진부령 너머 오대산 아래를 지나다가 감자꽃이 만발한 감자밭을 만났다. 감자밭이사 어딘들 없을 것이며, 감자밭에 피어있는 감자꽃이 뭐 대수랴만 오늘은 무심코 지나치고는 하던 감자밭과 감자꽃이 아니었다. 발길을 멈추고 감자밭 가까이에 갔다.
 넓은 밭에 싱싱하게 자라고 있는 감자 이랑이 쭈욱 뻗어 언덕을 넘고 있다. 밭은 아버지의 등처럼 넓적하게 굽어 있었다. 감자꽃은 결코 화려하지 않은 어머니의 얼굴이다. 오랜 가뭄에도 싱싱하게 자라는 푸른빛은 아버지의 희망이었고, 진한 젖빛으로 피어있는 감자꽃은 어머니 가슴에서 쏟아지는 생명의 근원이다. 감자밭 한가운데 이미 오래 전에 저 세상으로 가신 부모님이 서 계셨다. 반가웠다.
 우리 집에는 작은 감자밭이 있었다. 감자밭에 나가 보면 완두콩이 띄엄띄엄 자라고 있었다. 어떤 날은 개구리가 뛰는 감자밭에서 꽃뱀을 만나기도 했었다. ‘흰 꽃 핀 것은 흰감자, 자주 꽃 핀 것은 자주감자’라는 노래가 있었지만 대부분이 자주감자였다. 어른들이 보이지 않을 때 손으로 땅을 헤집고 살그머니 후벼내어 깨물면 아린 맛으로 전신이 흔들렸다. 그야말로 ‘생감자 맛’이었다.
 아버지는 서둘러 감자를 캐내고 그 땅에 모내기를 하였다. 가마니에 담겨 마루 끝에 자리한 감자는 춘궁을 모면하는 긴요한 양식이었다. 어머니는 꽁보리밥에 감자를 섞는 ‘감자밥’을 자주 하셨다. 어떤 때는 삶은 감자 몇 알이 점심식사의 전부이기도 했다. 가끔은 짚불에 감자를 구워먹기도 했지만 밥그릇에 묻혀 있는 감자는 정말로 먹기 싫었다.
 김천 구성면에서 감자농사를 짓고 있는 친구가 있다. 며칠 전만해도 감자싹이 돋아났다, 감자가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감자꽃이 피고 있다는 등 감자안부를 주고받으며 풍년농사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축하를 했었다. 그후 여행지에서 받은 카톡에서는 가뭄에 감자가 시들어간다, 경운기를 몰고나가 감자밭에 물을 주어야겠다면서 걱정이 태산이었다.
 친구가 짓고 있는 감자농사 안부가 궁금하다. 다가오는 주말이면 감자밭을 찾아가 봐야겠다. 감자밭 길고 긴 이랑에 잔뜩 피어있는 감자꽃을 보면 부모님 생각에 눈물이 날지도 모른다. 그래도 친구의 감자농사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배고팠던 시절도 아름다운 과거로 살아나고, 즐거웠던 유럽 여행도 편안하게 회상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감자꽃이 피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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