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류작가의 표절논란을 보며
  • 정재모
일류작가의 표절논란을 보며
  • 정재모
  • 승인 2015.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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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재모
[경북도민일보] 문장 표절의 역사는 꽤 깊다. 우리나라의 문장 표절 사례로 조선시대 여류 시인 허난설헌의 경우가 있다. 이수광은 지봉유설에서 허난설헌을 ‘근대의 여성 작가로서는 제일인자’로 평가하면서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허난설헌의 시집 속에 봉숭아꽃으로 손가락을 물들이는 시는 명나라 사람이 지은 시 <손가락을 거울에 떨치니 화성(火星)이 저녁달을 비끼는 듯하고, 눈썹을 그리니 붉은 비가 봄 산을 지나는 듯하구나.>라는 구절을 따온 것이다. 유선사(遊仙詞) 중 두 편은 당나라 사람 조당이 지은 시이고, 스님이 되어 떠나는 궁궐 사람을 보내는 한 편의 율시는 명나라 사람 당진이 지은 것이다.’
 김홍신의 소설 ‘걸신’도 표절논란을 일으켰다. 1985년 한 젊은 작가지망생이 ‘걸신’이 자신의 글을 가져다가 옮겨 놓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던 것이다. 이 소설은 법원의 발매 배포 금지 가처분 결정을 받았다. 표절이 인정된 것이다. 인기작가 김씨뿐 아니라 그의 독자들도 상처를 입었다.
 지난 2010년에는 당대 최고 반열의 작가 황석영의 장편 ‘강남몽’ 중의 일부가 표절논란을 불렀다. 어느 잡지의 인터뷰 글을 소설 속에 그대로 옮겨 그를 우러른 독자들을 참담하게 만들었다. 당시 황씨는 ‘인터뷰 내용을 가져다 쓴 것은 사실이지만 이처럼 남의 글을 자료로 활용하는 것이 허용할 수 없는 표절인지 우리 사회가 논의해봐야 한다.’는 취지의 입장을 취했다.
 연전엔 당대 최고의 작가로 꼽히는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황석영의 ‘아우를 위하여’란 작품을 표절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온라인상에서 뜨거운 공방이 이어지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것은 문장의 표절이 아니라 작품의 분위기와 설정, 흐름이 유사하다는 지적이어서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든 논란이었다. 하지만 이 논란 역시 당사자로 지목된 이가 한국문학 최고봉에 올라 있는 대 작가란 점에서 충격을 던진 게 사실이었다.
 ‘대가’들은 표절시비에 한번쯤 휘말려야 하는 걸까. 이번엔 ‘엄마를 부탁해’의 작가 신경숙이 입질에 올랐다. 소설가이자 시인인 이응준 씨가 논란에 불을 댕겼다. 그는 최근 온라인매체 ‘허핑턴포스트’에 기고한 글 ‘우상의 어둠, 문학의 타락’에서 신경숙씨가 일본 탐미주의 작가 미시마 유키오(平岡公威)의 작품 일부를 표절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면서 이 씨는 뼈 있는 소리를 덧붙였다. “2000년 가을 즈음부터 줄줄이 터져 나온 신경숙의 다양한 표절 시비들을 그냥 시비로 넘겨버리면서 이후 한국 문단이 여러 표절 사건을 단호하게 처벌하지 않는 악행을 고질화·체질화시켰다.”
 문제가 된 신경숙의 표절 논란 대목을 본다. <두 사람 다 실로 건강한 젊은 육체의 소유자였던 탓으로 그들의 밤은 격렬했다. 밤뿐만 아니라 훈련을 마치고 흙먼지 투성이의 군복을 벗는 동안마저 안타까워하면서 집에 오자마자 아내를 그 자리에 쓰러뜨리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 -김후란 옮김) / <두 사람 다 건강한 육체의 주인들이었다. 그들의 밤은 격렬했다. 남자는 바깥에서 돌아와 흙먼지 묻은 얼굴을 씻다가도 뭔가를 안타까워하며 서둘러 여자를 쓰러뜨리는 일이 매번이었다.> (신경숙의 전설). 신경숙 본인은 일본의 이 작품을 읽은 적도 없다고 해명했지만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글 쓰는 사람 누구나 표절 유혹에 빠지기 쉽다. 대부분의 경우 쓰는 글 자체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므로 잘 썼다는 칭찬을 듣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좋은 글은 독창적이고 진실해야 한다는 만고진리 같은 기본을 잠시라도 잊은 자가 펜을 드는 건 속된 탐욕일 뿐이다.
 더욱이 인간의 가장 맑은 영혼을 이야기하는 문학예술인이 표절을 하는 것은 갓 쓰고 도포 입은 선비가 도둑질을 하는 꼴이다. 글쟁이가 표절을 하다 들키는 날에는 그길로 글 써서 발표할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 게 옳다. 도덕적이지 못한 자의 글을 누가 읽겠는가.
 명쾌히 정리된 바는 아니지만 우리시대를 대표하는 큰 작가가 가장 추악한 표절 시비에 휘말려 있는 작금의 상황이 안타깝다. 법으로 규제할 성질의 것도 아니고 비난한다고 벌어진 일이 지워질 것도 아니어서 안타까움은 더하다. 글 쓰겠다는 사람들, 특히 문학예술에 마음 둔 분들 가슴에 새기고 새겨야 할 또 한 번의 표절 논란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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