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리스 오블리주와 군가산점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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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리스 오블리주와 군가산점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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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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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도민일보] 얼마 전 유승준을 비롯해 황교안 국무총리와 관련한 병역의무와 군면제문제가 회자되다가 메르스 영향 탓인지 기억에서 가물하다. 이 작은 땅덩어리의 나라에 사건, 사고는 얼마나 많은지…. 메르스 다음에는 무슨 일이 닥칠지…. 지금은 국회법인가? 1980년, 90년대에 유행한 말이 있다. 군 면제이면 신의 아들, 방위이면 장군의 아들, 현역이면 어둠의 자식들이라는 자조섞인 농담이 있었다. 그 때는 그랬었다. 병역비리는 어제, 오늘의 문제만이 아니다 역사적으로도 그랬다.
 필자가 유일하게 보는 드라마는 역사물인 징비록이다. 징비록 드라마에서 유성룡은 선조에게 군역, 오늘날의 병역에 대해 직언을 하는데 양반들은 대납과 방군수포로 군역을 지지 않기에 그 위화감이 커서 양민들의 불만이 극에 달해 있다는 것이다. 대납(代納)이란 면포를 주고 군역을 다른 사람에게 대신 지게 하는 것이고, 방군수포(放軍收布) 관에 면역의 댓가로 주는 면포라고 방송 자막이 알려주었다. 당연히 백성들은 양반들이 돈으로 떼우고 군역을 면하려 하니 당연히 위화감과 불만을 가진다는 것이다. 대다수 백성은 목숨을 담보로 하면서 양반은 면포로 대신하니 불공평할 수 밖에….
 한번 돌고 끝나지 않는 것이 역사이다. 오늘날로 돌아와 보자. 겉모습만 달리할 뿐 알맹이는 비슷하다. 우리나라에 왜 유독 고위공직자들 중 군면제자들이 많을까? 고위공직자의 청문회에 등장하는 단골메뉴 중의 하나는 군복무문제이다. 고위공직이나 전문직에 군면제자들이 평균보다 그 수가 많은 것은 달리 고차원적인 해석이 필요하지 않다. 단순하게 보면 된다. 남들이 3년 동안 군대에서 힘들게, 때로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군복무할 때에 고위공직이나 전문직에 있는 군 면제자들은 그 시간에 도서관, 고시원, 또는 절에서 공부를 하거나 학업을 계속 한 것이다. 정상적으로 군필을 한 남자가 가령 고시공부에 3년 투자할 시간이 있다면 군을 면제받은 사람은 6년 공부하게 되니 군필자보다 각종 고시의 합격권에 더 가까운 것은 사실이 아닌가? 100m 달리기라면 몇십미터 더 앞에서 뛰는 모양새이고 차·포를 떼고 장기를 두는 것이나, 바둑에서 상수가 하수에게 몇 접 접어주는 것과 진배 없다. 고위공직자들 중 군 면제자들이 많은 결과는 이들이 군 면제를 받음으로서 상대적으로 고시에 전념할 기회가 더 크다는 원인이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들이 군 면제받을 당시에 오늘날 이렇게 고위공직에 오를지 몰랐다는 점이다. 소싯적에는 청문회라는 것을, 여론이라는 것을 듣도 보도 못했었다만 오늘날 이렇게 고위공직 후보에 오를 줄 알았었다면, 군 면제나, 탈세, 부동산투기 이러한 일을 했을 리가 없을 것이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자원입대하지 않았을까! 인간이기에 미래의 일을 다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알았더라면 요즘 대학생들처럼 부동산투기나 위장전입, 탈세들의 비리와는 담을 쌓고 청문회를 대비하여 차곡차곡 좋은 스펙만을 쌓아왔을 터인데….

 이때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노블리스 오블리주(noblisse oblige)는 프랑스어 단어가 그 유래이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말 그대로 ‘nobility obliges’ 고결한 의무이다. 귀족이 자신에게 주어진 바 이상으로 사회적 책임, 특히 지도적인 역할에 있어서 책임을 다 하려는 지위를 가진 이를 요구하게 되는 개념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유럽식의 귀족계급이 어디 있으랴만, 이제 국민의 의무는 국민 모두에게 적용되는 시민사회인 것이다.
 다행인 것은 특히 군복무와 납세문제에 있어서 아무런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공직자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는 시민의식의 발로이다. 요즘 젊은이들의 군대에 대한 인식은 예전과 달리 많이 바뀌었다. 계속 터지는 군비리와 사건에도 국민의 의무로서 군복무에 대한 인식은 예전과 달리 긍정적이다. 이러한 의식의 외연을 확장해 보면 어떨까? 정부기관이건 기업이건 군필자를 우대하는 문화를 가지는 것을 어떨까? 군면제나 군복무와 관련이 없는 사람들에게 불이익을 주자는 것이 아니라 군필자를 우대하자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같은 말로 들릴지는 몰라도 그 정신은 다르다. 정상적으로 군복무를 마친 이들에 대한 현실적인 보상은 군가산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군가산점제도가 위헌판결을 받았다. 미국의 경우를 볼까? 미국이라고 다 옳다는 것이 아니라 모병제를 시행하는 국가라서 예로 드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미국의 군대는 월급줄 것 다 주는 하나의 직장이다. 한국은 징병제이다. 누구나 다 가야하고 영외자를 제외하고 군대를 직장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연방대법원에서는 군가산점부여에 대하여 합헌판결을 내린 바 있다. “Personnel Administrator of Massachusetts v. Feeney, 442U.S.256(1979)”라는 판례로서 연방대법원의 결정은 일반인에 대한 제대군인의 고용상의 우선권을 부여하는 주정부법을 지지한 것이다.
 판결이유에 필자의 관심을 끄는 한 구절을 소개할까 한다. “justified as a measure designed to reward veterans for the sacrifice of military service, …to encourage patriotic service”, 즉 “군복무의 희생에 대한 제대군인에 대하여 보상하고 애국적인 봉사를 격려하기 위한 조치로서 정당화된다”는 것이다. 농담처럼 하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힘든 군대가 어디냐고? 정답은 자기가 근무한 부대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주’라는 형이상학적인 개념보다 더 필요한 것은 희생에 대한 현실적인 보상이라는 말을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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