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밝고 어두운 면, 빛과 그늘을 있는 그대로 기억해야 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가 일본 하시마 탄광 등 메이지시대 산업 시설물들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결정한 뒤 조태열 외교부 2차관이 한 말이다. 공식 결정이 하루 연기되는 등 진통이 있었고, 등재를 끝까지 막아야 한다는 국내 다수 여론의 처지에서 볼 때 미흡한 점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이 일제 강점기 조선인 노동자들의 강제 노역 사실을 국제회의 석상에서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은 그 의미가 적지 않다.
그동안 일본은 ‘강제 노역’이라는 말에 강한 거부 반응을 보여왔다. 당시 노동 환경이 가혹했다 하더라도 노동의 대가를 지불했고, 일본인과 똑같이 대우했기 때문에 강제 노역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그 이면에는 강제 노역 표현이 들어가면 청구권 문제의 새로운 빌미가 될 수 있고, 결국 일제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공식 인정하는 국면으로 이끌릴 수도 있다는 나름의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래서 관련 시설의 등재시기를 1850년에서 1910년으로 설정, 1940년대에 자행된 강제징용을 피해가려는 꼼수를 쓰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결정이 있고 난 지 불과 수 시간만에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자국기자들과의 회견에서 “일본 대표의 발언이 강제 노동을 인정한 것은 아니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강제로 노역했다’는 영어 표현 ‘forced to work’는 ‘일하게 됐다’는 수동적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전 협상 과정에서 우리 측은 ‘강제노동’의 의미를 명확히 담은 ‘forced labour’라는 표현을 쓰려 했으나 한일간 막판 협의를 통해 ‘forced to work’로 절충됐다. 이 것이 기시다 외무상의 궤변 논거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가 문제다. 일본이 조선인 강제 징용 사실을 반영하겠다고 약속한 정보센터 등 후속조치를 제대로 지킬지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 일본은 2017년 12월 1일까지 권고 이행에 대한 경과보고서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제출해야 하며, 2018년 열릴 제42차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는 일본 정부의 권고 이행 상황을 직접 점검하게 된다. 우리 정부가 관련 동향을 예의주시하며 국제사회와 공조 속에 끊임없이 일본을 압박해 나가는 것 외에는 달리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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