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일보]
지난 8월 15일 네덜란드에서는 매우 특별한 광복 70주년 기념행사가 개최되었다. 이 준 열사 순국 108주년 기념 및 이준 평화박물관(www.yijunpeacemuseum.com) 20주년을 함께 기념하면서 네덜란드와 벨기에 그리고 독일에서 온 교민들이 함께 광복 70주년의 감격을 축하한 것이다.
네덜란드는 서양의 국가로서 우리나라와 가장 오랜 역사적 관계를 가진 나라이다. 왜냐하면 1627년 우리나라에 최초로 온 서양인들이 바로 네덜란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얀 벨테브레 (Jan J. Weltevree, 한자는 ‘朴燕’ 또는 ‘朴延’)는 네덜란드의 북홀란드주의 작은 마을인 드 레이프 (De Rijp)에서 태어나 1626년 홀란디아(Hollandia)호 선원으로 동양에 왔다가 이듬 해 아우베르께르끄(Ouwerkerk)호를 타고 일본으로 향하던 중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제주도에 도착하였다.
동료 선원이던 헤이스베르츠(D. Gijsbertz)와 삐터즈(J. Pieterz)와 함께 연료와 음료수를 구하려고 상륙했다가 조선 관헌에게 잡혀 1628년(인조 6년) 서울로 압송되었다.
그 뒤 이들은 훈련도감에서 총포의 제작·조종에 종사하다가 1636년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출전하여 헤이스베르츠와 삐터즈는 전사하였다. 그 후 1653년(효종 4년)에 하멜(H. Hamel) 일행이 표류해 제주도에 도착했을 때는 직접 제주도에 가서 통역을 맡았다. 그리고 이들이 서울로 압송되었다가 병영(兵營)으로 이송되기까지 3년 동안 함께 지내면서 조선의 풍속과 말을 가르쳤다고 한다.
큰 키에 노란 머리, 푸른 눈을 지녔으며 겨울에 솜옷을 입지 않을 정도로 건장했으며 그가 보았던 세계 여러 나라의 풍물과 천기(天氣) 관측에 대해 즐겨 이야기하고, 자주 선악과 화복의 이치를 말해 도자(道者)와 같은 면모를 보였다고 전해진다. 서울에서 조선 여자와 혼인해 1남 1녀를 두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위종 열사는 당시 기자회견을 통해 ‘우리는 이곳에 평화의 신, 자유의 신, 정의의 신을 만나러 왔다. 하지만 이 헤이그 만국 평화회의에는 평화, 자유 그리고 정의의 신을 만나지 못했다’고 외쳤다.
결국 이 준 열사는 머물던 드 용(De Jong) 호텔에서 객사하여 헤이그 시립묘지에 묻혔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헛되지 않아 1945년 조국은 광복의 기쁨을 맛보았고 지금부터 20년 전인 1995년 네덜란드의 한 교민부부는 이 호텔을 매입하여 이준 평화 박물관으로 개장함으로 유럽의 독립운동유적지로 거듭나게 되었던 것이다.
나아가 헤이그에 인접한 라이쉔담(Leidschendam)에 있는 네덜란드 개신교회를 한국의 감리교회가 구입하여 헤이그 이준기념교회(yijunmemorialchurch.org)로 개명하였고 지난 8월 15일 이곳에서 역사적인 광복 70주년 기념대회가 개최된 것이다.
이제 이준 평화 박물관은 남북한을 아우르는 많은 방문객들이 다녀갔고 적지 않은 일본인들과 외국인들도 방문하였다고 한다.
모쪼록 이준 열사의 죽음이 헛되지 않아 광복을 체험한 한반도에 진정한 통일도 이루어져 한반도가 세계 평화의 상징이 될 수 있는 날이 오길 기원한다.
▶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