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아버지라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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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아버지라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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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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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헌 삼우애드컴 대표
[경북도민일보] “스물아홉 - 열네 시간을 기다려서야 자식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지만, 당신도 모르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서른일곱 - 자식이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우등상을 탔습니다. 당신은 상장을 액자에 정성스럽게 넣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어 두었습니다. 아직도 당신의 방에는 누렇게 액자가 걸려있습니다. 마흔셋 - 일요일 아침, 모처럼 자식과 뒷산약수터를 올랐습니다. 이웃사람들이 자식이 아버지를 닮았다고 인사를 건냈습니다. 당신은 괜히 기분이 좋았습니다. 마흔여덟 - 자식이 대학시험을 보러 갔습니다. 당신은 평소와 같이 출근했지만,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오직 자식 잘 되기만을 바라며 살아온 한 평생. 하지만, 이제는 희끗희끗 머리로 남으신 당신…. 우리는 당신을 아버지라 부릅니다.”
 1995년 모 생명보험사 기업 P.R 카피입니다. 오래도록 남았던 그 카피를 오늘 다시 떠올려 보는 것은 이제, 나도 아버지가 되었기 때문이며, 불혹의 고개 넘어 지천명을 앞두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가장 사랑했을 때는 ‘차마 사랑한다’ 고 말하지 못한 그리고 아버지라는 말이,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가슴 한 켠에서 아려옵니다. 살면 살수록 문득 문득 잊고 사는 일상의 생활 속에서 아버지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참 가슴 깊이 들어옵니다. 아마 우리 아버지도 위 카피 속의 아버지의 마음이셨을 것이라는 생각에 머뭅니다.
 1996년 발표되어 화제가 되었던 김정편의 장편소설 ‘아버지’는 가정과 사회에서 설 자리를 잃어버린 아버지의 초상을 그리며, 당시의 경제위기와 가족해체 등 시대 상황과 맞물려 많은 이들의 가슴을 위로했던 소설이었습니다. 가족에게 힘이 되는 아버지, 아버지의 힘이 되는 가족들이 함께 읽으며 진한 감동과 위로를 얻은 적이 있었습니다.
 얼마 전까지 시립미술관에서 펼쳐진 제10회 장두건 미술상 수상작가展 송상헌 작가의 ‘아버지의 정원’을 보았습니다.
 작가의 어린시절, 아버지의 꽃밭과 어머니의 텃밭은 매일 한 치도 양보 없는 영역전쟁을 치뤘다고 합니다. 가정형편이 여의치 않았지만, 희망을 꿈꾸었던 이상주의자 아버지는 매일 시간 날 때마다 꽃에 물을 주시고 꽃과 화초를 심으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녁이면 어김없이 어머니의 등장과 함께 뽑혀져 나가는 신세인 아버지의 꽃들. 어릴 적 그러한 아버지의 꽃밭에서 희망, 꿈, 고향의 그리움을 모티브 삼아 꽃으로 이상적 세계를 표현하고, 어머니의 텃밭으로 상징화된 현실은 밥그릇, 국그릇, 다완으로 이미지화해 현실세계를 표현하지 않았을까 싶어 마음이 먹먹했습니다.
 그는 작업노트에서 “내 작업의 모티브는 어린 시절 추억과 그 속에서 피어난 현재, 미래의 갈등을 조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결국, 본인의 ‘빈자의 미학’은 삶을 대하는 하나의 방식이며, 그것이 표현에 의해 매개될 때, 작품 속 대상과 주최, 타자와 자아의 대립적인 관계를 감상자로 하여금 작품 속에서 서로 교류하고 보완하여 삶의 조화로운 변화를 유도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내게 말했지요. “설렘이 없는 생은 죽은 것이다” 라고, 그래 그 말에 절로 고개를 끄덕인 적이 있었습니다. 송상헌 작가의 목소리는 진정성이 있고, 말하는 태도는 진실성이 묻어납니다. 기실 나는 그의 말하는 태도가 참 좋았습니다. 그래서 잠시나마 그와의 스쳐지나가는 찰라 만큼의 대화에도 오래도록 남아있는지도 모릅니다.
 아버지를 통해 작가가 말하고 싶은 소리, 꽃을 통해 듣고 싶은 소리는 무엇이었을까? 해바라기와 찔레꽃, 바람꽃, 도라지, 철쭉과 자목련, 목단, 장미의 울림을 듣고, 무수한 꽃들의 아우성에 귀 기울여 봅니다.
 그리하여 처음에 허락된 마음 속 마음의 눈으로 나 자신을 마주하고 싶은 가을에 나는 다시, 불러봅니다.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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