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타기 위해 번역이 반역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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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타기 위해 번역이 반역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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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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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목 대가대 번역학 전공 교수
[경북도민일보] 중견 유통업을 운영하는 친한 선배 한 명이 있다. 이 선배는 사람들이 자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하다 안 되면 장사나 시키지!”라는 말을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선배는 장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고 훈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선배네 집은 시골에서 농약상을 했다고 한다.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손님이 가게에 들어오면 부부싸움을 멈추고 환하게 웃으며 “어서 오이소”라고 하는 부모님을 보고 자란 선배는 상인은 장사하는 환경을 익히고 철저한 상인정신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필자는 번역도 장사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번역과 번역학은 이론과 실제가 동전의 양면처럼 결합돼 있다. 영어를 좀 한다고 해서 번역을 만만히 보는 사람이 많다. 해당 외국어도 잘 구사하지 못하면서, 또 한국어도 제대로 모르면서 번역을 하는 이들이 많다. 번역에도 이론이 있다. 또한 번역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번역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이다.
 번역가들은 각자 나름대로의 전문 번역분야가 있다. 필자의 주요 번역분야는 IT번역과 법률번역으로 소설번역과 같은 문학번역은 어렵다.
 그래서 번역가들은 나름의 번역분야 이외의 번역은 의뢰를 받지 않는다.
 번역에는 두 개의 언어가 개입된다. 출발언어, 또는 원천언어(source language)라고 하는 것과 목표언어(target language)라고 하는 것이다. 영한번역이라면 영어는 출발언어, 한국어는 목표언어가 된다. 노벨문학상을 타려면 텍스트의 작품성이 있어야 하고, 또 이 작품이 한국어에서 영어로, 중국어로, 스페인어로 독일어로 일단 번역이 돼 세계 각국에 인지도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노벨의학상 또는 문학상, 물리학상 등 우리나라의 의학적, 문화적, 과학적 수준은 적어도 노벨상을 수상할만큼의 수준에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단 서구의 선진국가들이 몇 백 년에 걸쳐서 이룩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 기술, 예술 등의 분야에 있어서의 성과를 몇 십 년 만에 고도의 압축성장을 통해 이룩한 탓에 기초과학 분야와 같은 기본기가 딸리는 것은 인정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필자는 우리나라의 각종 노벨상 수상을 꿈꿔본다.
 일본의 경우 우리나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번역에 대한 관심과 지원, 성과가 크다. 일본은 명치유신을 전후하여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유럽의 법학, 경제학, 철학 등의 학문을 받아들이면서, 국가적 차원에서 번역사업을 수행, 서양문명의 일본화를 시도하였다.
 특히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철학을 비롯한 순수학문과 과학기술 분야의 많은 전문용어는 이 당시 일본에서 만든 것들이다. 가령, 철학, 과학, 학술, 기술, 예술, 화학 등이 그렇다. 아니 거의 모든 학문용어의 경우 하나씩 떼어 놓고 보면 중국의 한자들이지만 그 조합은 일본식의 번역과정을 거쳐 탄생하였다.
 번역에 대한 몇 백 년의 전통과 인식을 바탕으로 많은 자국의 문학작품을 외국어로 번역하는데 힘써온 일본에는 벌써 두 명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가 있다. 첫 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가와바타 야스나리, 두 번째 수상자는 오에 겐자부로이다. 중국도 모엔이라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낳았다. 이젠 우리 차례여야 한다.
 필자는 다양한 분야의 노벨상 중 문학상은 우리나라에 기반이 충분히 조성돼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문화와 예술, 한류드라마, 케이-팝을 보면 분명, 기반조성은 충분하다. 그렇다면 이제 번역에 힘쓸 때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히나 지적재산권에 대하여 인정하거나 돈을 지불하는데 아주 인색하다. 번역도 여기에 속한다. 영어로 된, 또는 한국어로 된 자료를 들고 와서는 번역해 달라고 하고선 금전적 댓가를 지불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이런 풍토 때문인지 번역을 그리 수준 높은 지적 활동으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번역학은 유럽, 특히 다중언어국가를 중심으로 1990년대에 이르러 하나의 분과학으로 자리를 잡아왔다. 출발언어에서 목표언어로의 번역과정에 관여하는 번역전략, 번역기저의 문화, 전문번역분야의 지식 등 번역에는 다양한 변수적인 요인들이 작용한다. 심지어 번역출판 시장의 경제적인 호·불황도 번역전략에 개입된다.
 종편방송의 서비스 개시와 다양한 FTA 등 번역시장에는 호재가 많다. 이제는 번역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번역과 번역학에 대한 인식 변화로 번역가의 대우와 인식이 달라지고 번역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지금도 정부 지원이 있다고 하지만 번역산업에 대한 보다 더 광범위하고 적극적인 정부의 지원이 있다면, 이것이 마중물이 되어 한류바람과 함께 세계에 한국의 문학작품을 소개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로 한국이 노벨문학상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약 7년 전 출간된 번역의 문제점과 우리말다운 번역에 대해 다룬 ‘번역인가 반역인가’ 라는 책 제목이 떠오른다. 번역이 잘못되면 반역이 된다. 번역이 반역을 하지 않고 한국에 노벨문학상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번역산업과 번역인재를 육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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