했던 말을 되풀이 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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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던 말을 되풀이 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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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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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일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주임교수
[경북도민일보] 이미 했던 말을 여러 번 되풀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말을 들어야 하는 사람은 지루하기도 하고 짜증이 나기도 한다. 왜 사람들은 했던 말을 수 십 번씩 되풀이 하는 걸까? 상대방이 모를 것이라는 착각에서 하는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 당시의 감정이 말끔하게 해소되지 못했기 때문에 되풀이해서 말하게 된다. 억울하고 힘들었던 사연들을, 말을 잘 들어주는 상대를 만나면 같은 얘기를 하고 또 하게 된다. 
 80대 노모에게는 다섯 남매가 있었는데 맏이가 딸이었다. 가난했던 시절, 노모도 고생이 많았지만 맏딸도 동생들을 챙기느라 어린 시절을 힘들게 보냈다. 노모는 그런 맏이에게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정을 가장 많이 느꼈던지 지난 시절 힘들었던 이야기를 맏이에게는 자주 쏟아냈다. 맏이는 이미 수 십 번씩 들은 얘기지만 할 때마다 처음 듣는 양 듣곤 했다. 노모는 과거의 힘들었던 사연을 이야기 할 때면 항상 “이 이야기는 너에게 처음 하는 말인데……”하면서 말을 시작하곤 했다. 그래서 귀를 기울려보면 이미 여러 번 들은 얘기였다. 그래도 맏이는 어머니가 원래 그렇다는 생각으로 듣곤 했다. 그렇다고 노모가 치매는 아니었다. 모든 행동이 나이에 비해 너무나 정정하고, 생각하는 것들도 매우 정상이었다. 그런데 동생들에게는 지난 이야기들을 하지 않았다. 까닭은, 동생들은 어머니가 같은 얘기를 두 번 하면 바로 핀잔을 주거나 역정을 내버리니 말을 붙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맏이 말고는 말할 상대가 없었다. 어쩌면 어머니가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맏이 하나 뿐인 셈이었다. 노모는 그 길을 붙잡고 지난 시절의 아픔을 스스로 치유하며 살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맏이도 노모의 말을 듣는 것이 지루하긴 마찬가지였다. 심리상담을 하는 것도 아니니 단지 듣기만 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속에 자꾸만 무엇이 쌓여가고 있었다. 맏이가 한 번은 동생들에게 어머니 얘기를 듣는 것이 힘든다고 하소연을 했더니 동생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것은 언니 탓이라며 오히려 언니를 나무랐다. 언니 때문에 어머니의 병이 고쳐지지 않는다고 몰아세웠다. 맏이는 억울했다. 그냥 참고 넘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신도 동생들처럼 하리라고 다짐을 했다. 노모가 또 “너에게만 하는 얘긴데……” 하고 말을 시작하는 순간에 맏딸은 강력하게 쏘아 붙였다. “어머니, 했던 얘기 그만 하세요. 그 이야기 수 십 번은 더 들었어요.”
 그 한 마디 말이 엄청난 결과를 몰고 왔다. 노모는 너는 자식도 아니라면서 다시는 집에 오지도 말라고 했다. 맏이는 당황도 했지만 여전히 또 억울했다. 동생들이 그렇게 대응할 때는 가만히 계시더니 유독 자기에게만은 그렇게 펄펄뛰면서 화를 내시니 어찌할 방법을 몰랐다. 그래서 몇 년 째 노모와는 대화가 없다고 했다. 명절이나 집안 대소사에 가기는 하지만 노모는 자신을 보면 쌀쌀하게 외면을 해 버리니 맏이의 마음도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왜, 했던 이야기를 여러 번 하는 걸까? 이미 이야기 한 사실을 잊어서 하는 경우도 물론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 당시에 받았던 감정이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달리 표현하면 그 때 받은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미 지난 일이니 되풀이해서 무슨 소용이냐고 말한다면 그것은 사람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지 못한 탓이다. 마음에 상처가 있으면 그 상처가 아물 때까지 사람들은 이야기를 한다. 물론 상처가 아주 심하면 말문을 닫아버리는 경우도 있다. 말문을 닫아서 상처가 치유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안에서 상처는 더욱 깊어지게 된다. 그래서 우울증이나 불안증이 오기도 한다.
 했던 말을 또 하는 사람을 보게 되면 짜증내지 말고 ‘저 사람이 얼마나 힘들면 했던 얘기를 저렇게도 오래도록 할까?’ 라고 생각하며 받아주는 것이 좋다. 그리고 도와줄 마음이 있다면 공감하는 자세로 듣고 또 들어주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사랑과 자비의 실천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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