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뚝 위에 세운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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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뚝 위에 세운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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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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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용준 한동대 글로벌에디슨아카데미 교수
[경북도민일보] 네덜란드는 말뚝 위에 세운 나라이다. 이 나라의 건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말뚝(paal)’이다. 원래 지반이 약하기 때문에 모든 건물들을 지을 때 반드시 말뚝을 먼저 박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말로 ‘건축을 시작했다’를 네덜란드어로는 ‘첫 말뚝을 박았다’라고 말한다. 겉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어떤 건물이든 땅 속 깊이 수많은 말뚝들이 묵묵히 그 건물을 받치고 있는 것이다.
 옛날에는 대부분 나무 말뚝을 사용했다. 그 대표적인 예를 든다면 암스테르담의 시내 한 복판에 있는 왕궁(Koninklijk Paleis, Royal Palace)이다. 이 건물은 야콥 판 깜뻔(Jacob van Campen)이라는 건축가가 1648년부터 건설에 착수하여 1665년에 완공하였으며 원래는 암스테르담 시청사였다.
 여기에는 모두 1만3659개에 달하는 나무 말뚝이 사용되었으며 당시로는 천문학적 액수인 총 850만 길더(약 400만 유로)의 건축비가 들었다고 한다. 이 나무 말뚝 숫자는 암스테르담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배우는 교과서에 실릴 정도였으며 그 외우는 방법까지 나와 있었다. (1년은 365일, 앞에 1, 뒤에 9) 이 건물은 네덜란드가 국제 무역으로 세계의 부를 독점하던 17세기 황금 시대 (de Gouden Eeuw, the Golen age)를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왕궁 이외의 모든 다른 건축물에도 말뚝이 사용된다. 과거와는 달리 현재에는 대부분 보다 더 견고한 콘크리트 말뚝이 사용된다. 건물 이외에도 심지어 고속도로를 건설할 때에도 말뚝을 박아 지반을 먼저 견고하게 하는 장면들을 네덜란드에서는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건축 또는 건설의 단가가 높아지지만 수명은 매우 길어서 암스테르담 시내의 집들을 보면 수 백 년 되었어도 여전히 사용 가능한 것을 볼 수 있다. 간혹 지반의 변화로 인해 말뚝이 기울어져 집들이 약간 기운 경우도 볼 수 있으나 받침대를 대면 여전히 사용 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어떤 네덜란드 시인은 이런 시를 짓기도 했다.
 “아름다운도시 암스테르담은(Amsterdam die mooie stad)/ 기둥 위에 세워져 있다네(is gebouwd op palen.)/이 도시가 한번 무너지면(Als die stad eens ommeviel)/누가 그 비용을 지불할까(wie zou dat betalen.)”
 한국의 구 서울역사의 모델이 되었다고 하는 암스테르담의 중앙역 건물도 1889년에 나무 말뚝을 박음으로 건축이 시작되었다. 물론 이 말뚝 공사는 네덜란드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다른 나라에서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네덜란드에서는 이 말뚝을 박는 일이 선택 사항이 아니라 모든 건축의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가치가 있다. 어떤 면에서 네덜란드라는 나라 전체가 말뚝 위에 서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말뚝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면서 두 가지 교훈을 얻는다. 먼저 우리 개인의 삶도, 가정도 나아가 국가도 결국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의 기반이 되는 교육과 연구 그리고 산업에 대한 투자는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또한 이 지하에 있는 말뚝들이 왕궁이든 집이든 아무 말없이 받쳐 주면서 사명을 다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수많은 말뚝들이 네덜란드의 모든 건물들을 지금도 받치고 있는 모습을 그려 보면서 우리 사회에도 나라를 묵묵히 떠받치며 소임을 다하는 말뚝들이 많아질 때 더욱 건강하게 될 것이고 우리는 특히 이들을 더욱 귀하게 여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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