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 시대 총아 인터넷의 업보
  • 정재모
정보화 시대 총아 인터넷의 업보
  • 정재모
  • 승인 2016.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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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도민일보 = 정재모]  최근 경남 의령경찰서 직원들이 한 동료 여자경찰관을 비난하는 시민들의 전화 때문에 시달렸다는 보도가 있었다. 해당 여경이 경찰공무원으로 일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는 데 대한 항의전화였다고 한다. 다짜고짜 상소리와 욕설을 일방적으로 퍼붓고는 전화를 끊어버리는 불특정 다수에 경찰도 속수무책이었던 모양이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인터넷으로 누리고 있는 정보화 시대의 어두운 단면 한 쪽을 새삼 보게 된다.
 해당 여경은 고교 3학년이던 2004년, 친구의 인터넷 홈피에 들어가 방명록에 한 줄의 글을 남겼다. ‘잘 해결됐냐? 듣기로는 3명인가 빼고 다 나오긴 했다더니… X도 못 생겼다 하더구먼. 아무튼 고생했다’라는 글이었다. 이 글의 전후 맥락은 이렇다.
 그해 1월 경남 밀양의 고교생 44명이 울산에 있는 여중생 자매를 밀양으로 오게 해 1년간 지속적으로 성폭행한 사건이 있었다. 사회적 파문이 컸다. 이 사건을 두고 당시 고교생이던 이 여경은 학교 친구인 가해자 중 한 사람의 홈피에다 이 글을 남긴 것이다. 덧붙이자면 여중생들을 지속적으로 성폭행한 몹쓸 가해 학생이 그녀의 친구인 까닭에 그 남자친구가 그동안 경찰서 등에서 조사받고 뭐 어쩌고 하느라 고생 많았다고 격려를 한 것이다. 글을 쓸 당시 아무런 비난도 뒤따르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여고생은 2010년에 그 어렵다는 공채시험을 거쳐 순경으로 임용됐다. 2012년 경찰공무원 임용고시학원 홈페이지에 합격 수기를 올렸다. 이를 본 어느 네티즌이 예의 그 글을 인터넷에 띄운 것이다. 그러자 누리꾼들이 해당 여경 신상 캐기에 나섰다. 누리꾼들은 당시 ‘가해자를 옹호한 사람이 어떻게 경찰관이 될 수 있느냐’는 비난을 퍼부으며 인사 조치하라고 항의했다. 결국 경찰은 2012년 4월 2주 동안 대기 발령을 했다. 2004년에 별 뜻 없이 쓴 그 글의 업보를 8년만에 받은 셈이다.

 그러나 ‘업보’는 끝나지 않은 건지 2014년 순경에서 경장으로 진급했을 때도 누리꾼들은 놔두지 않았다. 두 달 뒤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한공주’가 개봉되자 의령경찰서 홈페이지와 민원전화기에 한 번 더 불이 났다. 그리고 올 들어 지난 2월 ‘밀양사건’을 다룬 드라마가 한 유선채널에 방영되자 또다시 항의전화가 빗발친 것이다.
 이쯤 되면 누군가 의도적으로 그녀를 따라다니면서 계기가 있을 때마다 불을 지르는 사람이 있다는 의심이 들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그것은 별개 문제다. 어쨌거나 이 여경으로서는 감당키 어려운 번뇌에 시달릴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 모두가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정보화 시대의 총아인 인터넷의 업보는 이 여경만이 받고 있는 것이 아니란 사실이다.
 사실 우리는 그동안 여러 분야에서 네티즌의 맹목적 신상 털기 같은 ‘집단이지메’가 자살에까지 몰고 가는 경우를 종종 보아왔다. 그 누구라도 인터넷 글쓰기 같은 데에 자칫 잘못 뛰어들어 ‘어록’을 남겨놓으면 그게 언제 업보가 되어 자신을 괴롭히게 될 지 아무도 모른다.
 불교는 사람들로 하여금 업을 짓지 않도록 가르친다.  우리 사회도 인터넷상의 글쓰기가 업(業)이 될 수 있음을 가르쳐야 할 때다. 오늘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인터넷 글쓰기, 댓글달기 같은 것에 따를 수 있는 실정법 문제만이 아니라 윤리, 도덕 교육도 강화해야 한다.
 의령경찰서 여경의 경우로 이런 인터넷 업보의 문제를 네티즌들이 널리 인식하게 된다면 그 여경의 업보 고통은 그나마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사태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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