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성적인 인물 심리 극대화한 작품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뭘까요? 대체 왜 그렇게 말했을까요? 그 책은 나를 위한 책이고 선생님도 내내 나를 잊지 못했다는 걸 잘 알고 있는데 어쩌자고 다른 친구를 불러내어 나의 존재를 감추려고 하는 걸까요? 내 실수에 대한 복수인 걸까요? 나를 영영 용서하지 않겠다는 걸까요? 동생이 선생님과 나 사이를 오해라도 했던 걸까요? 그것도 아니면, 나를 완전히 잊어버린 걸가요?”(단편 ‘지극히 내성적인 살인의 경우’ 158쪽)
일상 속의 균열과 파동을 예민하게 감지하는 최정화 작가의 첫 번째 소설집 ‘지극히 내성적인’.
10편의 단편소설이 담긴 이 책에는 온전해 보이는 세계 안에 스며 있는 불안의 기미를 내성적인 사람들의 민감한 시선으로 날렵하게 포착해내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작가의 시선이 오롯이 스며 있다.
최정화의 소설을 읽고 나면 우리의 평온했던 일상이 미세하게 떨려오기 시작한다. 예민한 감각을 가진 소설 속 주인공들은 공통적으로 불안한 내면을 다스리지 못하고 균열된 관계를 해소할 수 없어 괴로워한다. 그들은 별로 중요할 것 같지 않은 한가지 생각에 끝없이 골몰하기도 하고, 원인을 알 수 없는 관계의 삐걱거림을 회복하지 못해 극단으로 치닫기도 한다.
가사도우미 면접을 보러 온 여자가 안주인 자리를 위협한다고 느끼는 단편 ‘구두’ 속 주인공과 끊임없이 자신의 처지를 불안해하며 새로운 것을 배우고 탐닉하지만 여전히 악몽을 꾸는 ‘오가닉 코튼 베이브’의 아내, 한때는 완전무결한 존재였으나 사고로 앞니 여섯개를 잃고 틀니를 하게 된 남편을 무시하게 된 ‘틀니’의 여자까지.
특히 소설집의 표제를 제공한 작품 ‘지극히 내성적인 살인의 경우’는 소심하고 ‘내성적인’ 인물들의 내면 심리가 극대화된 작품이다.
시골에서 집을 구해 여름 한철을 보내며 작품을 쓰는 소설가와 그 집주인 미옥과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화합될 수 없던 두 인물의 관계가 가까워졌다 다시 멀어지는 과정을 통해 미옥의 집착과 피해의식이 그녀의 손에 종이칼을 쥐게 만드는데, ‘내성적인 살인’으로까지 가게 될지 결과조차 우연에 맡기거나 상대에게 전가하는 미옥의 태도는 섬뜩하게 다가온다.
최정화는 ‘작가의 말’에서 “자신의 독자들이 소설을 읽는 동안 잠시 현실을 떠났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왔을 때 무언가 달라진 점이 있길 바란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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