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나쁜거야 이제 화해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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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나쁜거야 이제 화해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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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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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자식 가슴에 묻은’박성희 할머니의 피맺힌 상흔
 
6월은 박성희(85·포항시 북구 학잠동)할머니에게 잔인한 달이다.
남편과 자식을 조국에 바치고 가슴에 묻은 날이기 때문이다.
52돌 현충일을 하루 앞둔 5일, 전쟁 미망인 박 할머니를 만났다.
“이제 눈물도 말랐건만 가슴 먹먹한 건 여전하네 그려…”
할머니는 요즘 몸살을 앓고 있다. 이맘때면 꼭 찾아오는 불청객이다.
18살 동갑내기로 부부의 연을 맺은 할머니.
그러나 57년 전 한국전쟁 때 남편을 잃었다.
당시 충북 음성군 방위대장이었던 남편(정연택·당시 28세)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부모님과 7살, 3살배기 두 아들을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사지로 떠났다.
그리고 석달 후 인 1950년 9월 한줌의 잿가루로 귀환했다.
“외아들 전사 소식에 시어머니는 곡기를 끊고 8년을 누워 지내다 돌아가셨다”는 할머니는 하루 아침에 여섯 식구의 가장이 됐다.
“가슴 터지는 울음이 무슨 소용이야. 당장 시부모와 자식들 하루 끼니도 없는 판국인데.”
어머니는 강했다. 날마다 떡 광주리를 이고 생존의 가시밭길을 걸었다.
그러나 할머니의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965년 군 입대한 큰 아들(정태근·당시 22세)이 훈련 중 차량전복 사고로 순직했다.
“남편 먼저 보내고 생때같은 아들까지 잃었을땐 차라리 눈 감고 싶었다”는 할머니는 “무슨 명줄이 길어 아직도 살아있는지…”라며 글썽였다. 이후 할머니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같은 처지에 있는 전쟁 미망인들의 조언자로 여생을 보내고 있다.
며느리 최성숙(55)씨는 “30년 어머니를 모시면서 봉사와 사랑의 기쁨을 배웠다”며 “요즘도 아침마다 성모님께 세계평화를 기도한다”고 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팔순의 노인은 주름 골 물기를 닦으며 나지막히 되뇌었다.
“전쟁은 아주 나쁜거야. 억울하게 죽고 헤어지는 이들이 생기잖아. 어서 화해해야지. 눈 감기 전 마지막 소원이야.”
박 할머니의 세례명은 막달리아. 고난 끝에 나눔의 삶을 산 성녀다.

/이지혜기자 hok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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