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의료계의 고질적인 병폐로 꼽히는 리베이트 비리가 또 적발됐다.
서울 종암경찰서는 의약품 채택·처방을 대가로 45억원대 리베이트를 주고받은 혐의로 의사 292명과 제약사 임직원 161명, 병원 사무장 38명 등 총 491명을 적발했다고 발표했다. 경찰이 적발한 단일 리베이트 사건 가운데 검거자 수로는 국내 최대 규모다. 어느 의사 1명은 혼자서 억대 가까운 금품을 챙겼다.
우리 사회 대표적인 엘리트 전문직종으로 꼽히는 의사들이 대거 연루된 리베이트 비리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사건화될 때마다 재발 방지책이 나오는가 싶다가도 사문화되곤 했고 별 실효성이 없어 보이는 의료계의 자정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들끓는 여론을 일시적으로 무마하기 위한 입막음용 위장 대책에 불과했던 게 아닌지 의구심을 지우기 어렵다.
이번 조사에선 제약사 한곳이 무려 의료기관 1070곳을 상대로 리베이트 불법 영업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리베이트 수법은 점점 더 교묘해지고 행태는 더 노골화하고 있을 뿐이다. 의료계 스스로 비리 관행을 근절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건 무리인 듯 싶다.
리베이트는 의사들에게 특정 약의 처방을 유도하기 위해 제공되는 금품이다. 주로 현금, 상품권, 골프채 같은 것들이다. 이중 랜딩비는 제약사가 기존 거래 관계가없던 의사나 병원이 처음 처방해 주는 대가로 지급하는 뒷돈이다. 이번 조사에 근거하면 랜딩비의 리베이트 비율이 실제 처방금액의 최고 750%에 달했다.
리베이트는 통상 제약사-도매상-병원의 3자 비리 사슬로 구성돼 왔는데 최근엔 병원이 아예 도매상을 직영하면서 직접 챙기는 수법이 등장했다. 제약사-병원의 리베이트 직거래 방식이다. 뒷돈을 마련하는 데는 속칭 법인카드 카드깡이나 온라인 셀프 구매 수법이 동원됐다.
리베이트 비리가 횡행하는 데는 국내 제약시장의 구조적 취약성이 주요인으로 작용한다는 분석도 있다. 일부 대형 제약사를 제외하면 다수의 중소 업체들이 난립해 무한 경쟁을 벌여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별할 게 없는 비슷한 상품을 갖고 모두가 생존 경쟁에 뛰어들고 있고 살아남기 위해선 금품 로비가 불가피했을 것이란 얘기인데 이는 소비자인 국민을 우롱하는 변명에 불과하다.
리베이트는 약값 인상의 요인이 될 수밖에 없고 부담은 오로지 국민에게 전가된다. 리베이트를 받은 의사는 약의 품질이나 효능보다는 경제적 이득을 우선하게 될 것이고 이는 곧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독소가 될 수 있다는 건 자명한 일이다.
리베이트 관행이 난무하는 의료계에 국민 건강을 내맡길 순 없다. 비리에 연루된 인사들이 의료계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법률적, 제도적 방안을 강구해야 할 시점이 됐다. 의료계의 자정 운동이나 미약한 처벌로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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