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마지막 순간 예술가의 손끝에서 피어난 명작
  • 이경관기자
삶의 마지막 순간 예술가의 손끝에서 피어난 명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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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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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저술가 이유리, 화가 19인 임종때 남기고자한 최후의 메시지 생생하게 담아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예술가는 마지막 눈을 감는 순간까지, 작품에 대한 열정을 불태운다.
 미술저술가 이유리가 최근 출간한 ‘화가의 마지막 그림’은 19인의 예술가가 삶의 마지막 순간, 남긴 마지막 명작 이야기를 담았다.
 저자가 화가의 마지막 그림에 매료된 까닭은, 생의 끝, 가장 아름답고 치열한 시간에 화가의 손끝에서 피어난 그림 한 점엔 쉬이 껴안지 못할 삶의 진실이 녹아 있으리란 생각에서다.
 실제로 화가의 마지막 그림 안에는 죽음이 임박한 순간, 그들이 무얼 예감했고 무얼 목격했으며 무슨 메시지를 최후로 남기고 싶었는지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그녀는 이 책에서 죽음조차 그 예술혼을 사그라뜨릴 수 없어 시공간을 초월해 ‘기억되는’ 화가들에 대해 노래한다.
 저자는 많은 이들이 반 고흐가 마지막으로 그린 작품이라 믿는 ‘까마귀가 나는 밀밭’은 고흐의 진짜 유작이 아니라고 세계 고흐 전문가들의 증언과 논쟁을 인용해 설명한다. 그의 진짜 유작은 죽음 직전에 시작했으나 완성하지 못한 ‘나무뿌리’라는 것.
 고흐의 동생 테오의 큰처남이 남긴 편지에는 고흐가 마지막까지 그리고 있던 그림에 대해 “죽기 전 그는 나무 덤불을 그렸다. 햇빛과 생명으로 가득한”이라고 언급돼 있다. 실제로 이 그림은 채색이 덜 되어 스케치가 그대로 보이는데, 한번 잡은 작품은 끝을 내고야 마는 고흐에겐 이례적인 일이다. 채 완성하지 못한 이 그림은, 고흐의 죽음이 알려진 대로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었다는 데 무게를 싣는다.
 이중섭, 잔 에뷔테른, 에곤 실레 등의 화가들은 운명의 거친 옹이는 수줍던 연인들을 비극으로 물들여 애달픈 유작을 남기기도 했다.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은 화가 이중섭, 그는 일제강점기에 야마모토 마사코와 국적을 뛰어넘는 열병 같은 사랑에 빠졌다. 가난 때문에 헤어진 연인을 그리며, 중섭은 그 유명한 ‘중섭의 편지’를 남기기도 했다. 허나 척박한 현실은 재회의 희망마저 꺾었고, 그렇게 살아갈 이유를 잃은 이중섭은 연작 ‘돌아오지 않는 강’을 마지막으로 남긴 채, 그 스스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사랑하는 모딜리아니가 결핵으로 끝내 숨지자 9개월 된 뱃속 아이와 함께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한 잔 에뷔테른, 아내와 아이를 스페인독감으로 잃은 후 장례식 화환이 채 시들기도 전에 그들 뒤를 따라야 했던 에곤 실레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보여준 사랑은 우리에게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카라바조, 렘브란트의 마지막 작품에서는 화려한 성공에 이은 어두운 마지막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천재적 재능으로 ‘로마 최고의 화가’라 칭송받은 카라바조는 화실 밖에서 광기에 휩싸인 폭군으로 끝내 살인을 저질러 사형선고를 받은 채 추방됐다. 그의 마지막 그림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에는 자신을 향한 동정과 경멸, 그 복잡한 심사가 담겨 있다.
 단시간에 성공한 화가의 반열에 올라 남부러울 것 없었던 렘브란트 역시 카라바조의 전철을 밟았다. 그가 죽기 전 남긴 마지막 작품 ‘돌아온 탕자’에는 시작과 끝이 달랐던 그의 지난한 운명이 그대로 응축돼 있다.
 이외에도 시시각각 죄어오는 나치의 수색에 숨이 막힐 것 같은 상황에서도 여전히 ‘나는 살아있다’는 증거의 표시로 붓을 놓지 않은 유대인 화가 펠릭스 누스바움, 생때같은 아들과 손자를 연달아 전쟁터에서 잃은 후 ‘전쟁 반대’ 메시지를 새긴 작품을 줄기차게 생산한 케테 콜비츠 등 다채로운 이야기가 가득하다.
 이유리는 예술가들은 어쩌면 하나뿐인 마지막 유작을 남기기 위해 전 생애를 거치며 치열한 준비를 한 셈인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그녀는 화가들이 남긴 마지막 그림을 통해 우리는 사랑해야 하는 이유, 용서해야 하는 이유, 최선을 다해 삶을 되돌려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백조는 평생 울지 않다가 죽기 직전에 단 한 번 아름답고 구슬픈 울음을 뱉는다고 한다. 이 때문에 ‘백조의 노래’는 보통 ‘예술가의 마지막 작품’을 일컫는 말이됐다.
 백조들이 토해낸 마지막 울음 같은 작품들을 정성스럽게 선별하고 묶은 이 책은, 사는 게 고단할 때 잠시 멈춰 서서 펼쳐볼 인생의 설명서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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