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 열풍’ 에 이은 ‘공시(公試) 광풍’
  • 한동윤
‘고시 열풍’ 에 이은 ‘공시(公試) 광풍’
  • 한동윤
  • 승인 2016.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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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도민일보 = 한동윤] 서울 신림동과 노량진 고시원에는 무려 20만명에 가까운 청년들이, 신분상승과 출세를 위해 법률책을 달달 외우고 있다. 그러나 고등고시에 패스해 출세길에 오르는 고시생은 44명 중 단 한 명이다. 나머지 43명은 낙오자로 전락하고 만다. 그래도 고시준비생은 줄어들지 않는다.
고시 망국에 이어 이제는 ‘공시생’(公試生)’ 천하다. ‘공시생’은 ‘공무원시험 준비생’을 말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취준생 65만2000명 중 25만6000명이 공시생이다. 일반 기업 구직자보다 2배 가까이 많다. 직장을 구하는 취업준비생의 50% 가까이가 ‘공무원’이 되겠다고 머리를 싸매고 공부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고용정보원 고용정보분석팀장은 “공시족 중 63.7%가 노동시장을 경험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직장을 구하는 노력보다 부모의 재력을 빌려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다. 공시족이 응시하는 시험 가운데 9급 공무원시험이 45.5%로 가장 많고, 교원임용시험(14.8%), 회계사 등 전문자격시험(12.0%), 7급 공무원시험(11.8%)이 그 뒤를 이었다. 공시생들 때문에 이들이 응시 원서를 접수하는 2월이면 청년실업률이 치솟는다.
더 심각한 것은 직업을 가진 직장인들까지 ‘공시생’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직장인 회원 378명을 대상으로 현재 업무와 공무원 시험준비를 병행 중인지 여부를 물은 결과, 38%인 142명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직장인 공시족’은 ‘인강 및 교재로 독학’(33%)하거나 ‘퇴근 후 학원 강의를 듣는’(21%) 방법으로 공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틈틈이 독서실 및 도서관도 이용한다. 그러니 직장 일이 제대로 될 리 만무하다. 이직률이 높은 이유다. 2014년 대졸자 중 상시근로자 300인 이상 대기업 정규직 첫 직장 퇴사율은 12.3%에 불과한 반면, 중소기업 정규직 2년 내 첫 직장 퇴사율은 27.9%, 중소기업 비정규직의 퇴사율은 40.8%나 됐다.
공시(公試) 열풍은 확실한 정년보장으로 일반 기업보다 오래 일할 수 있고 안정적 수입과 높은 연금을 챙길 수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기업보다 위험부담도 적다. 큰 사고만 안 치면 정년까지 버틸 수 있다. 평생 ‘갑’(甲)으로 ‘을’(乙) 위에 군림할 수 있다. 또 연령 제한도 느슨하다. 50대에 공무원이 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한 공시생은 ‘대기업에 가고 싶은데 실력은 안 되고 중소기업은 가기 싫다’ ‘웬만해서 잘리지 않는 직업 안정성에 보수도 대기업 초임 연봉과 차이가 크지 않다’ ‘남보다 높은 신분’을 공무원의 메리트로 적시했다. ‘공복’(公僕)이라는 정신은 없다.

대졸 청년층과 기존 직장인들의 공시 열풍은 국가적 낭비다. 직장인이 공시를 준비하려면 월급의 상당 부분을 시험 준비에 투입해야 한다. 문제집과 학원강의, 독서실 이용 등에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자기 발전과 가족을 위해 써야 할 비용을 불확실한 미래에 낭비하는 꼴이다.
대졸 백수들의 공무원 시험 준비는 살벌하다. 공무원 시험 전문학원 ‘공단기’에 따르면, 공시생 평균 시험 준비 기간은 18개월이며, 그 동안  인터넷 강의를 듣는 비용은 월 평균 29만9000원이다. 공시생 1인당 평균 538만2000원을 사교육에 쏟아 붓는 셈이다. 공시생 1인 당 교육비, 생활비를 합치면 어림잡아 월 90만~115만원이 들어간다. 그 돈은 모두 부모님 주머니에서 나온다.
우리나라 청소년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은 5년째 변함없이 ‘공무원’이 1위다. 부모들이 선호하는 자녀 직업 1위도, 미혼남녀의 이상적인 배우자 직업도 1위가 공무원이다. 국민 너도 나도 ‘공무원’이 되어 국가에 충성하겠다는 데 나라 꼬락서니는 왜 이 모양인지 답답할 뿐이다.
미래창조과학부의 한 사무관은 산하기관 직원에게 고등학생 아들의 ‘영어 숙제’를 대신 해달라고 요구했다. 미래부의 한 서기관은 성매매 혐의를 받고 있다. 교육부 고위 간부가 ‘민중은 개·돼지’라고 했다고 혼쭐 나고 있다. 전남지방경찰청 8층 구내식당 복도에서 A경위가 싸지른 인분(人糞)이 발견됐다. 직업선택의 자유가 있으니 고시 열풍도 좋고 공시 열풍도 좋다. 그러나 판검사, 변호사, 공무원이 되려는 젊은이들의 인성(人性)을 검증하는 장치가 마련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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