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독내 동독간첩 2만명-대한민국은?
  • 한동윤
서독내 동독간첩 2만명-대한민국은?
  • 한동윤
  • 승인 2016.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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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도민일보 = 한동윤] ‘앨저 히스’. 그는 미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변호사로 연방 대법원 대법관 서기, 법무부 직원으로 일하다가 1936년에 국무부에 들어갔다.
그는 국무부에서 가장 촉망 받는 엘리트였다. 1945년 루스벨트 대통령을 수행해 얄타 회담에 참여했다. 스탈린은 루스벨트 전략을 간파해 회담을 유리하게 이끌었다. ‘소련 간첩’ 앨저 히스 덕이었다.
히스는 얄타 회담이 끝난 뒤 모스크바를 방문했고, 소련 외무부장 비신스키는 히스의 협조에 감사했다. 소련으로부터 ‘아레스’라는 암호명을 부여받았다. 1948년 타임지 편집위원 휘테커 챔버스는 미 하원에서 히스가 공산당원이었으며 자신에게 국무부 문서를 건네주었고 이 문서를 소련에 전달했다고 증언했다. 히스는 무고를 주장했다. 미국 진보 지식인들도 히스를 편들었다. 그러자 챔버스는 히스가 써준 메모와 타이핑 문서를 공개했고, 미 NSA는 히스가 소련 간첩이었다는 물증을 제시했다.
1944년 세계금융질서를 주도한 IMF 창립 당시 미국 대표로 핵심 역할을 했던 인물은 미 재부부 해외담당 책임자 해리 화이트였다.
그 역시 소련 정보기관에 포섭된 ‘두더지(mole)’ 였다. 그는 2차 대전 후 마르크화를 찍을 수 있는 동판을 소련에 넘겨줘 소련에 막대한 이익을 안겨준 배신자다.
동독이 무너진 뒤 동독 비밀 정보기관 슈타지(Stasi)에 의해 포섭된 서독내 비밀 정보원이 2만명이나 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동독 첩자로 포섭된 서독 연방의원 숫자가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었을 정도다. 브란트 총리의 보좌관, 여당 원내총무, 통일부 장관도 간첩으로 포섭됐다. 미남 공작원이 서독 거물인사 여비서를 유혹케 해 정보를 수집했다.

슈타지는 정계뿐만 아니라 재계·학계·종교계·언론계까지 침투했다. 심지어 서독 학생운동도 슈타지의 손아귀에 있었다. 서독 학생운동 조직 간부 볼프강 크라우스하르는 1998년 ‘공산주의자들에게 놀아난 우리들의 학창시절’이란 글을 발표해 큰 충격을 주었다.
1967년 전쟁 와중에 치러진 월남 대통령 선거에서 11명의 후보 중 차점 낙선한 야당지도자 쭝딘쥬는 민주 투사를 자처하며 유세 중 선동적인 연설로 반전 여론을 일으키고 월맹에 대한 유화정책을 주장했다. 월남이 공산화된 뒤 그가 월맹 고정간첩이었음이 밝혀졌다.
북한이 흔들리고 있다. 김정은은 언제 어디서 반역이 일어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의 북한식당 여종업원이 집단탈북한데 이어 중국 동북3성의 북한 여성 근로자들도 최근 집단 탈출했다. 북한군 소장이 김정은 비자금 400만 달러 이상을 들고 탈북했는가 하면, 18세 수학 영재까지 주 홍콩 총영사관을 찾아와 탈북의사를 밝혔다. 북한 내부가 안팎으로 붕괴되고 있다는 신호다.
북한이 붕괴되면 우리는 미국내 소련간첩과 서독 안의 동독 고정간첩, 월남에서 암약한 월맹의 간첩같은 ‘두더지’가 얼마나 많았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남북분단의 역사가 70년을 넘었고, 북한의 대남공작이 악랄했던 것을 감안하면 남한 내 북한 간첩이나 ‘두더지’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을 가능성이 높다.
‘남북교류-협력’을 내세워 틈만 나면 평양으로 달려가고, 평양에 가서 만경대를 참배, 방명록에 서명하고는 서울로 돌아와서는 때만 되면 친북활동으로 북에 충성을 서약해온 종북들이 북한 대남첩보기관 문서에 어떤 ‘암호명’으로 기록되어 있을지 궁금하다.
또 “흡수통일은 절대 안 된다”고 북한 멸망을 두려워하는 인물들의 행적도 어떻게 기록되어 있을 지 궁금하다. 그들은 왜 북한이 무너지면 곤란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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