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하면서 사찰에 돈 내는 건 억울하다
  • 정재모
등산하면서 사찰에 돈 내는 건 억울하다
  • 정재모
  • 승인 2016.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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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도민일보 = 정재모]  등산길 산 들머리 길에 바리케이드를 쳐놓고 입장료를 받는 광경을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돈을 받으려는 측과 등산객들 사이에 벌어지는 승강이도 항용 보는 일이다. 한쪽은 ‘이 구역에 들어서면 무조건 요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쪽은 ‘절에는 들르지도 않을 건데 왜 돈을 내야 하느냐’는 항의다. 이름하여 문화재관람료를 둘러싼 사찰측과 등산객들 사이의 승강이다.
 국립공원 내 사찰들은 절 아래 저 멀찍한 곳에 매표소를 지어 진입로를 막고 있다. 등산객들이 아예 달리 둘러갈 길이 없을 만한 목이다. 그래놓고 사람마다 최소 1000원에서 많게는 5000원까지 받고 있다. 도립공원이나 시·군립공원도 마찬가지다. 사찰이 보유한 지정 지방문화재들이 징수 근거일 것이다. 그곳 절에 들를 생각이 전혀 없을 뿐 아니라 문화재가 있는지 관심조차 없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통행세’를 내는 꼴이다. 황당하고 억울하기가 그야말로 ‘봉사가 기름 값 대기’다.
 사찰들이 등산 길목을 막아 문화재관람료를 받는 일이 논란거리가 된 건 지난 2007년부터다. 당시까지 국립공원 입장료와 문화재관람료를 통합 징수해오던 정부가 국립공원 입장료를 폐지하자 사찰들이 자체적으로 문화재관람료 징수에 나선 거다. 나라에서는 국민에게 공원을 무료로 개방했지만 사찰측에서는 돈을 받아야겠다는 거다. 현재 전국 16개 국립공원 내에는 문화재 보유 사찰이 27개가 있는데 이중 설악산 백담사와 덕유산 백련사만 돈을 받지 않는다. 나머지 25곳이 1000~5000원의 관람료를 받고 있다. 도립 및 시·군립공원에서 문화재관람료를 받는 사찰 수는 그 몇 배에 이른다.
 문화재관람료 징수에 대해 사찰들은 ‘문화재를 유지·관리·보존하고 주변 탐방로 정비 등을 위해서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단다. 비록 그런 주장이 타당한 것이라 하자. 그렇지만 절에는 들르지도 않고 먼발치로 지나가는 등산객에게 돈을 걷는 게 이치에 닿는 일일까. 도랑에 통발 대듯이 사찰에서 한참 떨어져 있는 산 들머리에 매표소를 설치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수긍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일부 사찰측에서는 ‘등산객이 절에 들르지 않더라도 통과하는 길이 사찰 소유의 산림 내에 나 있기 때문에 돈 받는 건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한단다. 덕유산 국립공원 내 한 사찰의 입장이라고 한다. 억지스럽기 짝이 없는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전남 구례 방면에서 지리산 성삼재로 오르는 도로 초입지점에서 입장료를 징수당한 사람들 수십 명이 지난 2010년 천은사와 전남도를 상대로 소송을 냈었다. 통행방해금지청구소송이었는데 대법원 상고심까지 간 이 재판에서 원고들이 일부 승소를 했다. 입장료를 되돌려 주고 각 10만원씩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거였다.
 대법원에서 이런 판결이 났다면 사찰과 지자체들은 그에 걸맞는 방향으로 자세를 틀어야 한다. 문화재관람료 매표소 위치를 조정하든지 하는 합리적 대안을 마련하는 게 옳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는 소리는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는다. 나중에 어찌 되더라도 우선은 받고 보자는 배짱일까.
 가을단풍철이 다시 눈앞에 다가왔다. 국·도립 공원을 찾는 국민들 발길이 크게 늘어나게 된다. 그만큼 곳곳에서 문화재관람료 징수를 둘러싼 다툼도 자주 벌어질 거다. 정부와 지자체들은 국민과 사찰들이 이런 싸움을 더 이상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들이 사찰들 소유의 각종 물건이나 건물을 보호·보존키 위해 문화재로 지정했다면 그걸 잘 유지 관리할 책임도 당연히 그들에게 있다. 따라서 문화재보존 관리비는 국고나 지방비로 하는 게 맞다. 사찰들이 그 업무를 대행하고 있는 셈이므로 정부와 지자체는 그들에게 상응하는 비용을 보전해 줘야 마땅하다. 그리하여 아무런 의무도 없는 애먼 등산객이 그 돈을 내야만 하는 불합리한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각 사찰들도 절 옆으로 지나다니는 등산객에게 편하게 돈 거두려고만 하지 말고 문화재관리 경비는 정부나 지자체로부터 당당하게 받아낼 생각을 하는 게 옳다. 반드시 스스로가 징수해야겠다면 문화재 관람객에만 받는 것이 정직한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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