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일보 = 정재모] ‘소하는 법을 간략히 했고 한비자는 번거로운 형벌로 나라를 넘어지게 하였다’라는 말은 주지하듯 천자문의 한 구절이다(하준약법 한폐번형<何遵約法 韓弊煩刑>). 부연하자면, 진나라 한비자(韓非子)는 형법을 너무 복잡하게 하여 나라를 넘어지게 했고, 진을 이은 한나라의 명재상 소하(蕭河)는 앞서 진나라가 갖고 있던 까다로운 법령을 폐지했다는 뜻을 담고 있다. 법이 번거로우면 안 된다는 가르침이다.
소하는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하고 사람을 상해하거나 도둑질을 한 자는 상응한 벌을 준다는, 이른바 약법삼장(約法三章)만으로 국법을 최소화했다. 그러고도 종묘사직은 4백 년 동안이나 이어졌다. 반면 법가사상의 창시자 한비자는 까다로운 법령으로 진시황으로 하여금 천하를 통일하게 만들었으나 바로 그 번잡하고 가혹한 법령 때문에 민심을 잃어 나라를 일으킨 지 불과 14년 만에 멸망하고 말았다.
택시 승객이 운행 중이던 기사가 급작스레 죽어가는 절박한 처지를 버려두고 매정히 떠나버린 일로 요 며칠 동안 인터넷과 언론이 뜨거웠다. ‘착한 사마리아인법’ 제정 논란이 불붙은 거다. 이보다 앞선 일이지만, 국회에 이미 이 법안이 제출돼 심의 중이다. 이른바 ‘묻지마 폭행’ 같은 걸 보고도 외면하면 처벌하자는 거다. 하지만 남의 어려운 처지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선한 마음을 유치원서부터 길러주는 인성교육보다 입법이 중요할 순 없다. 거리에 나온 시민들의 인터뷰들을 보면 착한 사마리아인법 논란에 대해 국민들은 썩 내키지 않은 반응들이다. 법조문이 많고 엄하다고 좋은 게 아니란 천자문의 메시자가 새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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