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일보 = 정재모] 경주에서 그저께 또 지진이 났다. 1주 전인 12일의 규모 5.8 지진과 거의 동일한 지역에 19일 오후 8시 33분, 4.5짜리가 또 찾아온 것이다. 1주일 전 것의 여진이라고 한다. 비록 본진보다 규모는 작지만 지진의 실체를 알게 된 사람들은 불안과 공포로 밤을 새워야 했다.
9·12 경주지진은 지역에 엄청난 피해를 남겼다. 지진 관측을 시작한 1978년 이래 최강진이란 이름이 허랑치 않게 경주, 포항에서 48명이 다쳤다. 재산피해는 경주, 포항을 중심으로 모두 4088건 100억원대라고 한다. 고도 경주에선 기와지붕 붕괴 피해가 태반이다.
큰 지진 나고 오늘로 아흐레째지만 지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날 이후 어제 정오무렵까지 여진은 그제 저녁의 4.5짜리를 비롯하여 400여회나 이어졌다. 이는 지난 7년간 일어난 지진횟수보다 많은 것이다. 이 때문에 지역민들에게 지난 9일간은 불안을 넘어 공포의 시간이었다. 언제 또 아파트를 흔들고 건물을 허물어버릴지 모른다는 공포는 5.8짜리 지진을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로선 짐작하기 어렵다.
지진을 둘러싼 괴담 중엔 SNS에 나도는 것만 있는 게 아니다. 사실 우리는 오랫동안 진짜 ‘지진괴담’ 하나를 신봉하고 살아왔다.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엔 큰 지진이 없다’는 막연한 이론 말이다. 이는 일부 과학자들의 말이기에 무턱대고 믿고 있었다. 이른바 판(板) 이론에 따르면 지구 맨틀을 뒤덮은 지각의 판(plate)은 10개다. 액체 상태의 맨틀 위에 일렁거리던 이 판들이 충돌할 때의 충격이 곧 지진이다. 때문에 판과 판 경계지점에서 벗어난 우리나라는 지진 안전지대라고 말해오고, 우린 그걸 믿어온 터다. 하지만 우리 역사에 수없이 나오는 지진은 무엇일까. 혹 판 이론의 전제나 추론이 틀렸다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닐까.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에는 서기 2년부터 1898년까지 총 1843개의 지진 기록이 실려 있다고 한다. 고려초기 불국사 석가탑이 지진으로 훼손된 적이 있다. 지진관측기가 없던 때이긴 하지만 옛 사람들이 기록으로 남길 정도라면 제법 규모 있는 지진이었을 거다. 가까이는 1936년 7월 4일 경남 하동의 지리산 쌍계사 부근에 규모 5.1의 지진이 있다. 이 지진으로 네 사람이 크게 다치고 절집 등 건물과 국보급 문화재 다수가 파손된 바 있다. 1978년 9월 16일엔 속리산에서 5.2 지진이 있었고 그해 10월 7일에는 충남 홍성에서 5.0짜리가 발생했다. 더 가까이는 2004년 5월 29일 울진 앞바다에서 5.2의 지진이 났다. 기록이 이러한데도 그저 ‘우리나라는 지진 안전지대’란 말만 믿고 있었으니 이야말로 허황된 괴담이 아니겠는가.
이번 경주지진은 큰 피해와 함께 우리 국민들에게 비싼 가르침 하나를 주었다. 한반도는 우리가 믿어온 것처럼 결코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란 엄중한 팩트 말이다. 지나친 불안에 휩싸일 필요는 없겠지만 대책은 차분하게 서둘러야 한다. 최소한 숙명적으로 지진에 시달려온 일본 정부와 그 국민들에 못지않은 지진 대비를 지금부터라도 차근차근 강구해야 할 때다. 이번 지진보다 조금만 더 수치가 높은 지진이 온다면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은 더 이상 공상일 수도 없다는 걸 우린 너무도 섬뜩하게 체험했다. 이를 계기로 대비 태세를 잘 갖추어 나간다면 이번 지진은 값진 예방 백신이 될 수도 있다. 경주지진은 지진사에 그렇게 의미 있는 재앙으로 기록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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