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일보] ‘민중총궐기 투쟁본부’는 지난 9월 20일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발족됐다. 그 투쟁본부가 ‘최순실 의혹’과 관련해 29일 서울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집회를 벌였다. 내건 구호는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다. 집회에는 더불어민주당 송영길·박주민 의원, 이재명 성남시장, 정의당 노회찬·이정미·김종대 의원, 무소속 김종훈 의원 등이 참가해 “대통령 하야”를 외쳤다. 집회에는 집회 측 추산 3만명, 경찰 추산 8000명이 참여했다. 적지 않은 규모다.
백남기투쟁본부, 세월호 참사 4·16연대 등의 활동가들이 마이크를 잡고 “박근혜 대통령을 끌어내라” “국민의 힘으로 독재자를 물리치자” “청와대·국정원 책임자 사퇴하고 새누리당 해체하라” “전경련 등 재벌과 박근혜 대통령은 공범이다” 등의 구호를 외친 것은 그렇다 치자. 또 주제와 관계도 없는 의료민영화 반대, 노동개혁 반대, 성과연봉제 반대를 외친 것도 논외로 치자.
문제는 제도권 정치권 소속 인사까지 대통령 하야를 거듭 요구했다는 점이다. 자치단체장인 이모 시장은 “박 대통령이 여왕인 것처럼 최순실을 끼고 대한민국을 우롱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리인이기 때문에 해고해도 된다. 대통령은 하야하라. 사퇴하라. 집으로 돌아가라”고 주장했다. 그는 “근본도 모르는 무당의 가족에게 (나라를) 통째로 던져버린 걸 용서할 수는 없다”며 “대통령이 하야하면 혼란이 온다는데, 지금보다 나빠질 수 있겠나. 새누리당을 해체하고 새 정부가 나와야 한다. 싸우면 이길 수 있다”고 외쳤다. 선동이다.
서울에서 이 시장 등이 “하야” 를 외치는 가운데 손학규 동아시아미래재단 상임고문은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 의혹과 관련 “대통령이 스스로 조사에 응해서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전남 강진 아트홀에서 ‘나의 목민심서 강진일기’라는 저서 출간과 함께 가진 북 콘서트에서다. 이어 “대통령 하야나 탄핵을 외치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것은 더 큰 혼란을 가져올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이후의 문민대통령들은 한결같이 임기말 각종 의혹과 부정·비리로 시달렸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아들 현철씨의 ‘국정농단’과 비리로 아들을 구속해야 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하나도 아니고 두 아들을 자기 손으로 감옥에 보내는 치욕을 겼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친형 건평씨가 구속되는 모습을 두 눈으로 봐야했으며, 이명박 전 대통령도 친형 상득씨를 감옥에 보내야 했다. 박 대통령은 피붙이도 아닌 최순실 때문에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역대 대통령이 친인척 때문에 치욕을 당하고 권위가 추락했지만 당시 누구도 ‘하야’를 요구하지는 않았다. 재야-시민단체들도 길거리로 뛰쳐 나오거나 ”대통령은 하야하라. 사퇴하라. 집으로 돌아가라”고도 하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이 ‘탄핵’ 당했다지만 국회에 의해서다. 그 노 전 대통령은 집권 첫해부터 지지도가 20%대에 불과했다. 임기 막바지엔 남북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10%대로 지지도가 추락했다. 그래도 “노무현 대통령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지 않았다. 최순실 의혹에 대한 분노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러나 지금은 “대통령 하야나 탄핵을 외치는 (국민의) 목소리를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것은 더 큰 혼란을 가져올 뿐”이라는 손학규 전 의원의 충고를 새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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