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일보 = 한동윤] 눈이 번쩍 뜨이는 제안이 나왔다. 야당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물러나라”고 윽박지르고, 박 대통령은 그럴 생각 추호도 없다“고 맞선 상황에서 난국을 지혜롭게 타개하는 ‘묘책’을 더불어민주당 문희상 의원이 제시했다.
문 의원은 14일 발표한 개인성명을 통해 “더 이상 국민에게 분노와 불안감을 줘서는 안 된다”면서 “국회 추천 총리로 과도정부를 구성해 현 시국을 수습하고 개헌으로 조기 대선을 치러야 한다”고 했다. 이어 “개헌을 하고 그에 따라 조기 대선을 치르면 박 대통령은 탄핵된 대통령으로 기록되지 않고 명예롭게 퇴진할 수 있게 된다”며 “박 대통령 퇴진을 원하는 사람들은 대통령 임기를 단축시키는 효과를 볼 수 있으며 헌정 중단이라는 최악의 사태를 막을 수 있다”고 했다.
더 이상 덧붙이고 말고 할 게 없다. 국회에서 총리를 추천하는 것은 이미 박 대통령도 야당에 요청한 것이다. 국회가 합의해 추천한 총리를 대통령이 임명하면 그 총리가 내각을 중립적으로 운영하면서 ‘개헌’을 서두르고, 개헌이 완료되면 그에 따라 새 정부를 구성하자는 내용이다. 그렇게 되면 야당이 박 대통령에게 “사퇴하라”고 고함 칠 일도 없다. 아마 박 대통령도 이런 제안까지는 거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문 의원은 내친 김에 개헌의 방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원집정부제 혹은 내각제 개헌으로 대통령 권한이 축소돼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 한 사람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되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가 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 만큼 이번 기회에 권력 구조를 바꾸는 개헌을 함께 처리하자는 취지다.
박 대통령의 거취를 개헌과 연계시킨 문 의원의 주장에 호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당 박 지원 비대위원장은 “대통령제가 얼마나 큰 문제를 가져오는지 이번에 확인했기 때문에 분권(分權)형 개헌이 필요하다”고 했다. 민주당 대표를 지낸 김종인 의원 역시 “결국 정치 체제가 바뀌어야 나라가 바뀌기 때문에 내각제 개헌으로 가야 한다” 면서 “권력을 쥔 소수의 횡포를 막을 수 있는 제도”라고 했다. 야권의 한 관계자도 “현 대통령제가 유지되면 이후 대통령들은 약간의 비위만 드러나도 하야 요구에 직면할 것”이라고 했다.
내각제나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에는 많은 여야 의원들이 공감하고 있다. 더민주당의 ‘비노- 비문’ 의원과 국민의당 대부분이 이원집정부제 혹은 내각제 개헌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새누리당에서도 김무성 전 대표가 “제왕적 존재의 지시를 거절하지 못한 사람들이 조사받고 구속되는 모습이 마음 아프다”며 “권력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했다. 개헌의 공감대는 어느 정도 형성된 분위기다.
다만 문재인 - 안철수 두 대권주자만 반대다. ‘대통령’을 꿈꾸는 두 사람으로서는 단독 집권이 머잖아 보이는데 대통령 힘을 빼는 개헌이 달가울 턱이 없다. 그러나 개헌이 대세로 굳어지면 두 사람도 어쩔 수 없을지 모른다.
박 대통령이 제안한 ‘개헌’은 ‘최순실 개헌’이라는 손가락질 속에 동력을 잃었다. 그러나 최순실 게이트 때문에도 ‘개헌’이 절실하다는 주장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대통령의 위기가 ‘국가의 위기’로 발전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일리 있고 공감할 수 있는 말이다.
이제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 촛불을 드는 일이 없어져야 한다. 촛불 대신 문희상 의원이 제안한 ‘개헌을 통한 대선일정 조정’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현행 대통령 단임제에서는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실패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자칭 대권주자들이 제2의 노무현· 박근혜가 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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