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봇대
  • 김용언
꽃봇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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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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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도민일보 = 김용언] 해마다 동네 골목길엔 나팔꽃이 핀다. 이 꽃은 질긴 나일론 줄을 타고 하루가 다르게 쭉쭉 뻗어 올라간다. 어디론가 이사가버린 이웃 사람이 몇년전 매어놓은 ‘꽃줄’인 것 같다. 그러나 가까이 있는 전깃줄까지는 이르지 못한다. 기껏 올라가봤자 담장까지가 고작이다. 마치 선반 위  맛있는 과자에 눈독들인 나머지 뒤꿈치 들고 까치발 선 어린아이같다. 
그 꿈을 이루는 이는 역시 시인인가 보다. 상상과 염원만으로도 아름다운 광경을 성취한다. 함민복 시인의 ‘꽃봇대’를 읽으면 그런 생각이 든다. “전등 밝히는 전깃줄은 땅속으로 묻고 / 저 전봇대와 전깃줄에 나팔꽃, 메꽃, 등꽃, 박꽃… 올렸으면/ 꽃향기, 꽃빛, 나비 날갯짓, 벌소리/ 집집으로 이어지며 피어나는 꽃봇대/ 꽃줄을 만들었으면.”

요행히 나팔꽃 줄기가 전깃줄에 닿아 꽃줄이 된다한들 그게 오래가랴 싶기도 하다. 젓봇대를 수시로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그대로 둘성 부르지도 않아서다. 전봇대 사이에 걸쳐있는 선(線)은 돈다발을 이룬다. 전깃줄만 있는 게 아니다. 그러니 작업에 거추장스러우면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끊어 내버릴 것 아닌가.
이런 몰인정한 상상이 보기 좋게 깨져 버렸다. 한국전력 부산울산지역본부가 ‘꽃봇대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다고 한다. 꽃까지 올릴지는 알 수 없다. 그대신 시와 그림이 전봇대를 장식한다. 보도된 사진을 보면 변압기를 비롯한 전력설비의 널찍한 공간엔 시와 그림이 가득하다. 마치 삭막하기만 하던 골목길 담벼락이 벽화로 가득찬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공간은 활용하기 나름이다. 둘레길 안내판도 되고, 이정표도 된다. 지중화가 안되어 핀잔거리이던 애물단지의 모습은 간 곳 없다. 덕지덕지 나붙은 광고물도  없다. 이기영의 ‘고향’이 생각난다. “이 근처 사람들은 생전 처음보는 기차와 정거장과 전봇대를 보고 경이의 눈을 크게 떴다.” 이제는 예쁘게 변신한 ‘꽃봇대’에 눈을 크게 뜰 때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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