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해 멀리 보내소서
  • 정재모
묵은해 멀리 보내소서
  • 정재모
  • 승인 2016.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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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도민일보 = 정재모] 서산 너머로 해가 저문다. 날마다 한 번씩 지는 게 해이지만 지금 넘어가려는 해는 1년에 한 번인 섣달그믐의 해다. 발음이 께름칙해 입에 잘 올리지도 않았던 병신년이 가뭇없이 영원의 어둠 속으로 묻히는 시각이다. 붉은 놀은 구름에 덮여 사그라지고 사람들은 불을 밝힌다. 밤을 달리는 길 위의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도 긴 여운을 남기며 깃들 곳으로 돌아가고 있다. 달려온 한해를 되돌아보게 되는 삭연(索然)한 시각이다.
진부하지만 ‘다사다난’ 말고는 더 적합한 낱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기껏 떠오른다는 게 박근혜요 최순실이며 촛불뿐이다. 이 셋으로만 온통 얼룩진 병신년이 서서히 지고 있다. 이 낱말들은 해가 바뀐대서 쉬 사라질 것도 아니다. 밝아올 새아침 새 태양이 떠오른 뒤에도 얼마나 더 우리 주변에 어른거릴지 모르는 말들이다. 올해 세밑은 그래서 더 어둡다. 밝아올 새아침에 대한 기대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온 국민은 칠흑보다 더 어둡고 무거운 마음의 그믐을 맞고 있다.

털어버릴 걸 털고 나면 마음이 가벼워질 텐데 털지 못하는 한해다. 못 털어 마음이 가볍지 않은 올해는 분명 불행한 1년이다. 되돌아볼수록 초라하고 자괴감 가득한 해다. 제야의 종소리도 애써 듣고 싶지 않다. 밝아올 원단의 해를 기다리는 설렘도 없다. ‘누구를 원망하랴’던 옛 유행가 가사처럼 답답하기만 하다. 이런 심사로 해를 보내는 게 처음인 게 호미곶자(子)만은 아니리라. 이렇게 어두운 마음으로 제야를 맞는 것도 난생 처음이리라.
생각해보면 억울하고 분통 터지는 일뿐인 병신년이다. 지나간 30여 년 간 아시아의 떠오르는 태양이 되어 선망의 눈빛을 한 몸에 받던 우리다. 그 대한민국의 긍지가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자신들의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하면서 우리는 침울한 한해를 어둠 속에 보낸다. 이 그믐, 엿 같은 지난 한해, 억지로라도 털어버리자. 비록 밝아올 정유년 새해에도 올해의 답답함이 이어질지언정 이 밤에 그려야할 평화로운 꿈마저 버릴 수는 없다. ‘독자 여러분, 부디 다사다난 묵은해 멀리멀리 날려 보내시고 좋은 꿈들 꾸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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