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우와 유방의 故事서 읽는 ‘소통 리더십’
  • 모용복기자
항우와 유방의 故事서 읽는 ‘소통 리더십’
  • 모용복기자
  • 승인 2017.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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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도민일보 = 모용복기자] BC 200여년 경 중국 진나라는 시황제 사후 환관 조고에 의해 폭정이 날로 심해지자 전국에서 우후죽순처럼 반란이 일어났다.
농민 출신 진승과 오광의 난이 그 중 대표적이다.
진승과 오광의 난이 진나라 왕권을 위협할 정도로 기세를 떨칠 즈음 이에 자극을 받은 유방과 항우도 각각 거병을 한다.
항우는 초나라 명문귀족 후손이며 유방은 뒷골목 왈패나 한량 정도의 미천한 신분으로 출발부터가 극과 극이었다.
두 사람은 진나라 타도라는 공통의 기치 아래 한 때 연합군을 형성해 진나라를 멸망시켰으나 논공행상을 계기로 완전히 등을 돌리고 만다. 이로부터 4년 간에 걸친 천하쟁탈전에 돌입한다.
애초에 항우는 유방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치 군사력에서 우위에 있었다. 또 범증이라는 역대급 군사(軍師)까지 거느려 천하의 주인이 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할 일이었다.
하지만 항우는 범증의 말을 무시하기 일쑤였으며 불같은 성미와 잔인함에 두려워 백성들은 속으론 원성을 하면서도 앞에서는 복종했다.
믿었던 부하 장수들이 하나 둘 유방에게 투항하고 백성들로부터도 신망을 잃게 되자 갈수록 군사력이 약화된 나머지 해아의 전투에서 항우는 유방군에 포위되어 결국 자결하고 만다.
항우는 ‘전쟁의 신’으로까지 불리며 출전하는 전투마다 연전연승하며 결코 패하는 법이 없었다.

진나라와의 전투때 항우의 군대가 막 장하를 건넜을 때였다. 중과부적이었던 항우는 갑자기 타고 왔던 배를 침몰시키라고 명령을 내리고, 싣고 온 솥마저도 깨뜨려 버리고 주위의 집들도 모두 불태워버리도록 했다.
병사들에게는 3일 분의 식량을 나누어 주도록 했다. 돌아갈 배도 없고 밥을 지어 먹을 솥마저 없었으므로, 병사들은 결사적으로 싸우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병사들은 출진하라는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적진을 향해 돌진했다. 이렇게 아홉 번을 싸우는 동안 진나라 주력부대는 궤멸되었고, 이를 계기로 항우는 군웅들의 맹주가 됐다.
이 일화에서 파부침주(破釜沈舟), 즉 솥을 깨고 배를 빠뜨린다는 고사성어가 나왔다. 항우가 유방에게 패한 이유가 군사력이나 용맹함의 부족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유방은 ‘한초삼걸(漢椒三傑)’이라는 장량, 소하, 한신 같은 유능한 부하들을 두었다.
하지만 항우와 달리 항상 이들의 말을 경청했으며 관용과 포용으로 가는 곳마다 백성들이 쌍수를 들고 환영해 그 세가 날로 커갔다.
항우와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국가 최고 지도자의 불통으로 국론은 양분되고 수많은 국민들이 주말마다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피로감도 극에 달했다.
‘비선실세 국정농단’이라는 전인미답의 사태도 결국은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닫은 불통의 결과다.
수천 년 전에도 그럴진대 오늘날 정보화시대에 있어 불통의 정치가 낳을 결과는 너무나 명약관화하다. 항우와 유방의 고사가 시사하는 바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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