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일
  • 정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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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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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도민일보 = 정재모]  섣달을 뜻하는 글자 ‘납(臘)’은 사냥할 엽(獵)자와 통한다, 섣달을 납월이라 하는 것은 엄격히 말해 납일(臘日)이 섣달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납일은 동지 후 세 번째 드는 미일(未日)로, 날짐승 길질승 들을 사냥하여 신에게 제사 지내는 날이다. 절에서는 승려의 1년을 납이라 일컫는다. 하안거(음력 4월 보름날 시작)로무터 이듬해 하안거가 돌아올 때까지가 1납이다. 승려가 된 뒤로부터의 연조를 법랍(法臘)이라고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요즘도 절에서는 납일을 중히 여겨 각종 제향(祭享) 행사를 치른다.
 60~70대로 농촌에서 자랐다면 어린 시절 한겨울 밤에 참새잡이 놀이를 해본 기억이 있을 거다. 또래들이 떼를 지어 새 통발을 가지고 다니며 참새가 잠들었을 초가지붕 처마 끝을 들쑤셨다. 놀란 참새가 엉겁결에 날다가 대어둔 통발에 드는 거다. 그렇게 잡은 참새구이는 맛도 좋거니와 어린아이가 먹으면 침을 흘리지 않고 병치레도 않는다고 했다, 어른들은 그래서 겨울밤 참새잡이  놀이를 시켰던 거다. 그 참새 사냥하는 날이 바로 납일이었다. 이날 참새뿐 아니라 어른들은 멧돼지 산토끼 몰이사냥에 나서기도 했다. 납일 사냥은 민속이었던 거다.

 동국세시기에 ‘납일에 내린 눈을 녹인 물은 약으로 쓴다’고 적었다. 깨끗한 독에 눈을 가득 담아 그 녹은 물로 환약을 지을 때 반죽을 하고 눈병을 앓는 사람이 눈을 씻으면 효과가 있다고 했다. 책과 옷에다 이 물을 바르면 좀이 슬지 않는다고도 했다. 김칫독에 넣으면 김장 맛이 오래토록 변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과학인지 여부는 알지 못한다. 아무튼 이런 납일 민속들은 그 옛적 부여(夫餘) 때부터 행해져 조선을 거쳐 농경사회의 끄트머리 60년대까지 면면히 이어졌던 거다.
 오늘이 음력 섣달 스무사흘, 일진은 정미(丁未). 24절기의 마지막 절기인 대한(大寒)이자 납일이다. 음력으로도 병신년이 마무리되고 있는 시점인 거다. 굳이 안타까워할 일이야 아닌 거지만 사라져간 납일 민속 몇 가지 들춰보는 건 ‘그리움’ 때문이다. 여느 세시(歲時) 못지않게 많이 행해졌던 납일의 풍속이 자취를 감춘 것을 새삼 되돌아보면서 우리의 지금은 그 옛날 농경시대보다 행복지수가 높은 걸까, 뭐 그런 걸 괜스레 혼자 한번 톺아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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