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일보 = 정재모] 팔(腕)을 ‘폴’이라 하고 따로따로를 ‘또리또리’라 하는 경상도에선 파리(蠅)도 ‘포리’라 한다. 15세기까지 살아있던 아래아(·) 음가가 이 지역서는 17세기를 전후하여 ‘ㅗ’로 변하고 딴 곳에선 ‘ㅏ’로 변한 탓이다. ‘폿죽’도 팥죽이라 하는 서울말에 기대어 깜냥의 ‘표준말’을 준비한 어느 경상도댁이 콩 가게에 가서 ‘캉 한 되’ 달라고 했다는 우스개가 있다. 언어학자 허웅 교수가 저서 언어학개론에서 소개한 인위적 음운변화의 사례다. 윤똑똑이들의 ‘캉’ 현상은 자음 쪽에도 많다. ‘지름’이 기름이요 ‘질’이 길이며 ‘짐’을 김(海苔)이라 하는 서울말을 관찰한 끝에 길쌈을 ‘질쌈’이라 해온 자신의 구개음화를 피하자는 심산에 짐(負)을 ‘김’이라 하고 점심을 ‘겸심’ 따위로 엉터리 교정을 범한다.
이처럼 잘못된 말을 바로잡을 생각에서 멀쩡한 바른말을 잘못 고쳐버리는 현상을 언어학에선 과잉교정(hypercorrect) 또는 부정회귀(不正回歸)라 한다. 이 부정회귀는 급기야 ‘짐 나간다, 길 비켜라’고 해야 할 계제에 ‘김 나간다 질 비켜라’는 우스꽝스러운 말을 낳고 만다. 정작 고쳐야 할 건 놔두고 옳은 걸 손보는 엉뚱한 일은 언어현상에서만 있는 게 아니다.
지난해 12월 국회는 조세특례제한법 중 해외진출 기업이 국내로 유턴해올 경우 베푸는 세제혜택 조항(104조의 24) 일부를 개정했다. 정부제안 입법이다. 개정 전까지 수도권은 유턴기업에 세액 감면혜택을 주지 않았다. 그런데 수도권으로 공장을 이전해 와도 세금 및 금융부문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법을 고친 것이다. 이번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으로 수도권 내 ‘과밀억제권역’에 해당하지 않는 경기 수원, 안산 파주 동두천 양평 이천 등으로 이전하면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한마디로 수도권 규제를 완화하는 조치인 거다.
중국 동남아 등지로 나갔던 기업들 다수가 최근 국내로 유턴하고 싶어 하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현지의 사정이 당초 진출할 때와는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차라리 어렵더라도 국내가 낫다는 판단들을 내리고 있는 걸로 알려지고 있다. 굳이 설명하자면 ‘수도권 혜택’ 법 개정이 아니더라도 기업들이 다른 지방을 찾아서 유턴해올 여건이 무르익고 있다는 거다.
그런데 덜컹 수도권 억제를 완화해 버렸다. 비수도권으로 유턴하고 싶은 기업이 더 이상 있겠는가. 그동안 조세특례제한법 관련조항은 지방으로 이전하는 기업에만 소득세 법인세 감면혜택을 주고 수도권을 혜택 범위에서 제외했던 것은 지방을 살리자는 뜻이었다. 그러나 이제 수도권 중 과밀억제권역에 들지 않는 지역에도 같은 혜택을 주게 됐다. 어느 기업이 물류와 인력확보 측면에서 유리한 수도권을 두고 지방으로 가려 할까. 탄핵정국을 틈타 슬그머니 수도권 완화책을 밀어붙인 것 아니냐는 항의가 지방에서 나오고 있음도 간과해선 안 된다.
국회, 특히 조세소위특위 위원들은 이런 점을 생각이나 하고 정부 개정안에 손을 들어줬는지 모를 일이다. 정부와 국회는 자신들의 이번 수도권 규제완화 입법이 ‘김 나간다 질 비켜라’는 식의 부정회귀인 줄이나 아는가. 음운변화에서 과잉교정은 우스꽝스러운 말을 만들어내는 데 그칠지 모르겠지만 정책에 있어서의 그것은 관련이 있는 많은 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다. 정부와 국회는 개정한 조세특례제한법을 다시 원래대로 되돌리는 게 옳다. 그것이 지금 수도권 이외 전국 지방의 한결같은 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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