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진짜 걱정은 가부간 결정 이후다
  • 정재모
탄핵, 진짜 걱정은 가부간 결정 이후다
  • 정재모
  • 승인 2017.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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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도민일보 = 정재모]  0과 1이 같아지는 희한한 궤변논리가 있다.
 χ=0일 때, 0의 제곱도 0이므로 χ=χ²이란 등식은 당연히 옳다.
 이 등식에서 양변을 χ로 나누면 χ는 1이 된다. 1만 되는 것이 아니다.
 (χ+χ+χ…)의 행렬은 (0+0+0…)이면서도 동시에 (1+1+1…)과도 같다. 곧 0은 1도 되고 2와 3도 각각 될 수 있으며 나아가 모든 자연수가 다 된다.
 이 말은 급기야 0=∞라는 어처구니없는 결과에까지 이어지고 마는 셈이다.
 아무것도 없는 것이 무진장 많은 것과 같을 수 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곧 아무 것도 없는 허공이라는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불경 구절을 연상시키는 이 황당한 수식 앞에 우리는 잠시 어리둥절해진다.
 마술 같은 이 등식의 함정은 어디에 있는가. 그 답은 어떤 수도 0으로는 나눌 수 없다는 원칙의 파괴에 있다.
 ‘수를 0으로 나눌 수 없다’는 불능(不能)이 증명인지, 공리인지, 아니면 약속된 규칙인지 올바른 수학용어를 알지 못하지만 여기서는 ‘원칙’으로 해두고자 한다.
 대통령 탄핵 심판 정국에 휩싸여 있는 우리 사회에선 지금 너무도 많은 원칙의 파괴가 벌어지고 있다. 탄핵 찬반 양 진영이 헌법재판소를 한껏 압박하는 행태야말로 근자에 보는 대표적 원칙파괴의 하나다.
 지난 주말 탄핵 인용을 주장하는 촛불집회와 기각을 외치는 태극기집회가 서울도심에서 각각 대규모로 동시에 열려 사회적 긴장감을 크게 증폭시켰다.
 지난주 말뿐 아니라 탄핵심판이 시작된 이래 끊임없이 지속돼온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그리고 이것은 탄핵심판 때까지 계속될 조짐도 분명하다.

 민주법치국가에서 국민이 뽑은 대통령직까지도 법리 해석에 따라 삭탈할 수 있는 권한과 권능과 권위를 법으로 부여받은 곳이 헌법재판소이다.
 그럴진대 탄핵심판 중인 헌법재판소에 대해 어떠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서는 안 되는 게 민주국가의 근간을 유지하는 원칙일 거다. 뿐더러 편안하게 심판할 수 있도록 보호해 주는 것이야말로 원칙 중의 기본원칙일 것이다.
 설령 광장에 나온 국민 대중이 그런 영향을 끼치려 하더라도 그걸 말리는 게 정치지도자들이 지켜야 할 원칙적 자세 아니겠나.
 그런데도 정치사회적 영향력이 큰 정치인들이 나서서 탄핵을 인용하라, 또는 기각하라고 군중을 동원해 압박하는 모습마저 거리낌 없이 보이고 있다.
 여야 없이 대선 예비후보들은 저마다 탄핵 찬반의 집회에 나서서 ‘혁명’을 선동하는 듯한 발언을 서슴없이 쏟아내 오고 있다. 법치를 잠시 제쳐두자는 걸까.
 구체적 사례와 언급 내용은 여기에 적지 않겠다. 하지만 저들은 지난주 말 집회 때도 그러했고 앞으로도 탄핵 여부의 결론이 날 때까지 이런 언행을 거침없이 보일 것이다. 이 행태에 대해 우리사회를 지탱하는 원칙의 파괴로 봐도 하등 잘못은 아닐 거다.
 정작 걱정스러운 것은 탄핵 가부 결정 다음에 있다. 정치지도자라는 사람들이 지금처럼 원칙을 허물어가면서 주말 찬반집회를 계속 선동하는 작태라면 탄핵심판이 어떻게 결론 나든 마음에 안 드는 쪽이 담박하게 수용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지금보다 더 격렬히 들고 일어날 건 불을 보듯 뻔하다. 대 혼돈이 나라 안을 휘저을 것이다. 속된 표현으로 그야말로 ‘x판’이 되고 말 것이다.
 이 같은 사회적 혼돈은 정치하는 사람들이 민주주의와 법치 원칙을 도외시하고 국민의 촛불과 태극기 집회를 고무 선동했으니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탄핵 여부 결정 이후의 우리 사회는 0이 때때로 1도 되고 2도 되며 무한대도 될 수 있는 대 혼돈의 시기가 펼쳐질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아찔한 짐작뿐 아무도 정확히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정치 지도자들의 원칙 파괴가 터진 봇물 같은 무질서 사태를 부른다면 누가 무슨 재주로 책임질 건가.
 국민들은 지금 그걸 걱정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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