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내린 탄핵… 최종 마무리는 ‘승복’
  • 정재모
막 내린 탄핵… 최종 마무리는 ‘승복’
  • 정재모
  • 승인 2017.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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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재모 언론인

[경북도민일보 = 정재모]  규모가 큰 줄다리기 민속을 이어온 경북 고령(高靈)과 경남 창녕군 영산(靈山)지방에는 ‘뭐, 줄 당긴 뒤와 같은 일인데…’라는 말이 있다.
 매우 서운한 일이긴 하지만 그 마음을 오래 끼고 있을 일은 아니라는 말을 할 계제에 흔히 구사하는 관용어다.
 이 말에는 민주 시민정신이 녹아 있다.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영산줄다리기는 근래 들어 삼일절에 벌이지만 1950년대까지만 해도 정월 대보름 놀이었다.
 읍민들은 고을 가운데를 가른 도랑을 경계로 동·서편이 나뉜다.
 대보름날을 달포가량 앞두고부터 집집마다 볏짚을 거두어 거대한 줄을 꼬아 만든다.
 읍내 사람들은 줄을 만들면서부터 승부의 신명에 젖어 상대편에 대해 대립감정을 세우게 된다.
 그런 감정이 최고조가 되었을 무렵 줄다리기가 벌어진다.
 이윽고 한쪽이 이기고 한쪽은 진다. 
 어떤 일을 두고 대립 관계에 있던 개인끼리나 집단 간의 감정이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 게 우리네 인간이다.
 마을 이장 선거에서도 지지후보나 의견을 달리했던 진영 간에는 선거가 끝나고 한동안 후유증 같은 게 남는다.
 줄다리기를 끝낸 사람들의 마음 또한 그렇다.
 두 달 가까이 승리 고지를 향해 치달아온 경쟁에서 이긴 쪽은 통쾌한 우월감에 우쭐해지고 진 쪽은 분해서 며칠 동안 잠을 자지 못한다.
 상대편 얼굴조차 쳐다보기가 싫어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 감정은 오래 품고 있을 게 아니라는 걸 사람들은 안다.
 그러하기에 대립감정은 이내 풀어진다.
 그리고는 ‘뭐, 줄 당긴 걸 가지고…’라며 그동안 품었던 적대적 오기를 겸연쩍어 한다.
 마을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다시 정겨운 얼굴들을 회복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승복이다.
 이로써 줄다리기를 통해 형성됐던 잠깐의 대립감은 협동심과 단결력으로 승화된다는 게 민속학자들의 설명이다.
 대통령 탄핵심판이 어제 인용으로 결론 났다.
파면을 선고한 거다.

 8인재판관 만장일치란다.
 이로써 지난 석 달 간 우리 사회를 갈가리 찢어온 이 세기의 대형 줄다리기는 막을 내렸다.
 막은 내렸지만 선고 직후의 뒤끝은 뒤숭숭하다.
 ‘태극기광장’에 나온 비율만큼의 국민은 승복하지 못한 채 깊은 침묵과 망연한 심사에 빠져 있다.
 어제 헌재 선고 이후 탄기국 등 반대 쪽에서는 ‘유감’ ‘국민저항운동’ 같은 용어를 아끼지 않으면서 향후 본격행동을 예고했다.
 헌재 결정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갈등의 시작일 거란 기왕의 우려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커지는 거다.
 생각해보면 국민 다수가 원해서 시작한 탄핵심판이다.
 달리 말해 헌법재판소를 믿고 올바르게 판결해달라고 위임했던 거다.
 그렇다면 어제의 판결을 두고 어느 쪽이 환호작약하고 어느 한쪽이 패배감에 빠져 허우적거릴 일도 아니다.
 어차피 결정이 마음에 들건 안 들건 받아들일밖에 도리가 없다.
 졌지만 승복하는 것, 그것이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고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이겼지만 패자를 겸손하게 감싸는 포용, 그것이 우리네 모듬살이의 기본이기도 하다.
 정치권은 이제 더 이상 민심에 염장을 지르거나 선동하는 언행을 삼가야 한다.
 광장의 탄핵결정 반대 민심을 이성적으로 설득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이고, 지지층에 대한 보답이다.
 그리고 각계각층 국민 모두는 차분하게 자기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정치권이나 국민 모두는 이제 5월 9일 이전에 있을 대선이라는 또 다른 축제를 신명나게 준비해야 한다.
 진영간에 명운을 걸다시피 했던 탄핵 사태를 민속놀이에 기대어 말하는 게 적절치 못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대통령 탄핵사태가 매듭지어진 지금 줄다리기로 갈렸던 마을이 다시 하나가 되는 갈등해소와 화해의 과정을 본받았으면 한다.
 이번 탄핵 사태의 가장 바람직한 뒷정리는 만족한 쪽의 겸손과 불만인 쪽의 겸허한 승복이다. 지난 석 달 간 쏟아 부었던 열정을 줄다리기 같은 한바탕 축제로 여기고 훌훌 털어버릴 때 탄핵사태는 최종 마무리될 수 있다.
 적대감으로 휘몰아온 진영 간 갈등은 이제 ‘줄을 당긴 뒤’처럼 마음을 열어 마무리해야 할 때다.
 그래야만 이번 미증유의 탄핵은 선진 대한민국 법치주의의 금자탑이 되고 나라발전의 동력으로 승화되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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