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대화에서 한국인이 유의해야 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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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대화에서 한국인이 유의해야 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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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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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상문 고려대학교 연구교수

[경북도민일보] 한국인은 친구사이든, 부모형제사이든, 심지어 연인사이에도 정치얘기만 나오면 대화가 곧잘 말다툼이 되고 만다. 요즘엔 더 심해져 친구들을 만나면 정치얘기는 피하는 게 대세다. 언제까지 그렇게 살아야 할까? 한국인들이 정치얘기로 말다툼이 벌어지는 이유는 정치 견해차 때문만이 아니다. 개인의 언어적 요인과 사회의 언어적 요인이 포개져 있는 것도 간과해선 안 될 원인이다. 전자로는 진위확인도 하지 않고 부끄럼 없이 남 말을 자기주장인 것처럼 떠벌리는 무지가 첫째요, 진영논리나 파당적 수렁에 빠져 자기생각만 옳다고 우기면서 상대를 설복시키려는 자만심과 오만이 둘째요, 상대의 말을 잘 듣지도 않고 자르거나 무시, 곡해하는 등 대화방법을 모르는 기본소양 부족이 셋째요, 견해와 주장이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비관용적 자세와 다양성을 받아들일 줄 모르는 막무가내의 ‘똥고집’이 넷째다. 
후자로는 자신의 지지자나 정당을 절대 무오류의 존재로 떠받드는 독선 외에 공동의 언어가 부족한 점도 중요한 요인이다. 일례로 무엇이 ‘혁명’인가 하는 점과 관련해 ‘5·16’을 긍정하는 쪽은 ‘혁명’이라고 하고, 부정하는 쪽은 ‘군사쿠데타’라고 주장해 언쟁이 끊이지 않는다. 이처럼 혁명의 정확한 개념을 공유하지 못해 일어나는 유형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정치얘기가 유의미해지려면 자기견해나 주장을 공박하는 상대를 미워해선 안 된다. 바둑이나 운동경기에서 기량이 엇비슷한 적수를 만나면 능력발휘가 상승되듯이 라이벌은 없애야 할 적이 아니라 오히려 고마워하고 아껴야 할 존재다. 장자철학이 펼쳐지도록 촉매역할을 한 혜시(惠施)처럼 말이다. 장자는 혜시와의 논쟁에서 서로 얼굴을 붉히고 싸우기도 했지만, 혜시가 지적 함량 면에서 논쟁상대가 됐기에 자기논리를 맘껏 전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생각과 마음이 말로 표현되는 인간관계에서 말이 복덕이 되거나 독이 되는 게 다반사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도 갚을 수도 있지만, 멸문지화를 당한 예도 숱하게 많다. 말이 복덕이 되는 경우엔 문제가 없지만, 화가 되는 까닭은 남의 잘잘못이 거론의 대상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살다보면 자신이 비판 받을 때도 있지만 남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거론할 때도 있다. 가정과 지인들 사이에서, 특히 직장, 군대 같은 조직생활에선 피치 못하게 남의 잘못을 거론해야 할 때가 적지 않다. 이 경우 석가가 남의 잘못을 들춰야 할 때 유의하라고 설한 다섯 가지를 기억하면 좋겠다. 첫째, 들추려는 잘못이 사실인지 필히 확인한다. 둘째, 시기가 적절한지 살핀다. 셋째, 이치가 상대방은 물론, 제3자에게도 이익이 되는지 살핀다. 넷째, 부드럽고 조용하게 시끄럽게 하거나 까다롭게 하지 않는다. 다섯째, 사랑하는 마음을 꾸준히 유지하며 성내지 않아야 한다. 마음에 새겨야 할 큰 가르침이다.
정보의 진위와 근거를 확인도 않고 옮기거나 재주장하는 것도 삼가야 한다. 사람들 중 20%는 당사자에게 직접 사실의 진위여부를 확인하지만 80%는 온갖 정보와 감정의 배설물이 뒤엉켜 진위가 불분명하고 정확성이 의심스러운 인터넷에 묻는다. 소위 ‘파레토법칙’인데, 위험천만한 일이다. 또 경책하고자 함이 상대를 위한 것이고, 내용도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발설의 때와 장소가 중요하다. 선인들이 말의 시의성을 강조하고 경구로 남긴 이유다. 조선후기 유학자 강박(姜樸)선생이 아무리 금과옥조 같은 “말이나 생각일지라도 때가 아닌 상황에서 말하면 망언이 된다”(思而雖得, 言之有時, 匪時則妄)고 경계한 게 한 예다.
말의 어투와 용어도 세심히 가리고 주의할 일이다. 복덕은 말에서 오고 말에서 사라진다. 시의성을 알고 대화의 소양을 갖춘 사람은 정치얘기를 자주 해도 된다. 대화를 하다보면 대안이 창안되기도 해 정치얘기야말로 낙후된 한국정치를 변화시킬 밑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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