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늑대가 양을 다 잡아먹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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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늑대가 양을 다 잡아먹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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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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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혁이반 아이들
▲ 서가숙 작가

[경북도민일보] 7. 현우야, 쫌

남이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보통 잔소리를 하게 됩니다.
자신의 생각대로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잔소리를 하다보면 버릇이 됩니다.

선생님은 잔소리하기가 싫었습니다.
잔소리 한다고 듣는 현우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참을 수 없을 때는
“현우야, 쫌……”
하고 짜증을 목구멍으로 삼켰습니다.
“선생님, 실내화 잃어 버렸어요.”
“언제, 어디서 잃어버렸는데?”
“몰라요.”
“모르다니, 어제는 있었니?”
“어제는 있었는데 오늘 와 보니까 없어요.”
“복도에 두고 갔었니? 아니면 집에서 안 가져왔니?”
“가져간 것 같기도 하고, 복도에 두고 간 것 같기도 하고…”
“그걸 모르면 어떡하니? 찾아봐.”
“다 비슷해서 모르겠어요.”
“이름은 적어놨어?”
“아니요.”
“현우야, 쫌……”

선생님은 정말정말 궁금했습니다.
현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현우가 집에 가기 전에 불렀습니다.

“현우야, 학교에 오면 뭐가 제일 재미있니?”
“쉬는 시간이요.”
“쉬는 시간이 왜 좋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으니까요.
“뭐하고 노는데?”
“그냥, 이리 저리 돌아다녀요.”
“나중에 뭐가 되고 싶어?”
“몰라요.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오늘 숙제야.
어른이 되면 무엇이 되고 싶은지 생각해와.”

현우는 집에 와서 처음으로 골똘하게 생각에 잠겼습니다.
“훌륭한 사람들은 모두 공부를 잘했지.
운동선수들도 태어날 때부터 운동감각이 있었고.
어른이 되려면 아직 멀었는데 벌써부터 생각할 필요 없어.
내 마음도 수시로 변하는데, 어른이 되면 그때 생각해도 늦지 않을 거야.”
결국 현우는 숙제를 하지 못했습니다.

무엇이든 나중에

무엇이든 안 해도 괜찮아.
무엇이든 거꾸로 하고
무엇이든 미루기만 하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현우.
선생님은 고민이 빠졌습니다.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양치기 소년”을 얘기해주고 자신의 생각을 짧게 적어서 발표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10분후, 먼저 다 적은 사람이 손을 들고 발표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양치기 소년을 믿고 양을 맡겼을 거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그 나이의 친구들은 모두 학교에 가고 집이 가난한 양치기 소년은   혼자서 외롭게 양을 지켜야 하니까 화가 났을 거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늑대가 나타났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나중에 어떤 벌을 받게 될 지 생각도 못하고 심심하다고 거짓말 한 것은    나쁩니다.”

“거짓말이 나쁘다는 것은 양치기 소년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양치기 소년이 나쁜 것을 알면서도 늑대가 나타났다고 거짓말을 한   것은 심심했기 때문입니다.
가지고 놀 장난감도 동화책도 없이 하루 종일 혼자 양을 지킨다는 것은 힘   든 일입니다.
양치기 소년은 불쌍하다고 생각됩니다.
학교에도 못가고 친구도 없이 양을 돌보게 했던 부모나 마을 사람들도 반   성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양은 마을 사람들의 재산입니다.
그 재산인 양들을 어린 아이에게 맡긴 것은 잘못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가끔씩 늑대가 나타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늑대가 나타나면 소년에게 마을에 알리라고 했을 겁니다.
늑대가 소년을 다치게 할 수도 있는 무서운 동물인데, 소년 혼자 지키게 한   것은 아주 위험하다고 생각됩니다.
어른 혼자서도 늑대를 막아내기가 힘 드는데, 아이에게 양을 지키게 한 것은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은 나쁘다고 인정했지만, 양치기 소년이 불쌍하고, 외로워서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 이번에는 현우가 발표해 보세요.”
“선생님, 저는 안 적었는데요.”
선생님은 현우에게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현우의 생각을 듣고 싶었습니다.
“공책에 적지 않았어도 자신의 생각을 말해 보세요.”
“선생님, 늑대가 양을 다 잡아 먹었어요?”
“글쎄……”
“늑대가 아무리 배가 고파도 뚱뚱하고 무거운 양을 한 마리만 물고 가는 게   아니에요?
아니면 늑대가 백 마리 나타나서 양을 다 물고 가던 지요.”
“그러게, 늑대가 몇 마리 나타나서 몇 마리 물고 갔는지는 선생님도  자세히 몰라요.”

“저 같으면, 제가 양치기 소년이라면 늑대가 양을 물고가도 마을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뛰어가지 않을 겁니다.”
“왜?”
“산에서 뛰어 내려가는 동안 늑대는 도망치고 없을 테니까요.  어차피 잡지도 못하는데 마을 사람들 고생시키느니 늑대가 양을 잡아 가도록 보고만 있을 거예요.”
“현우야, 쫌!”
선생님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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