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일만 포항의 정체성 단상
  • 경북도민일보
영일만 포항의 정체성 단상
  • 경북도민일보
  • 승인 2017.03.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배용일 포항문화원장

[경북도민일보] 근래부터 ‘포항을 알면 미래가 보인다’는 역사 문화적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자주 홍보하고 있다.
‘포항의 정체성을 알면 포항의 밝은 미래를 전망할 수 있다’는 뜻과 상통하는 말이다.
21세기는 정체성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자체의 정체성 발굴과 현대화는 지자체의 문화융성과 창조경제의 융합체로서 그 가치는 수량될 수가 없다.
포항의 발전은 포항시민의 주인정신과 자존심으로 이뤄져야 한다. 주인정신과 자존심은 시민스스로 포항문화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할 때 바로 서게 된다. 가장 포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란 말과 같이 포항을 상징하는 이미지는 포항 고유의 문화유산과 그 정신을 바탕으로 했을 때 창조적인 생명력을 갖는다.
지금까지 발표한 포항 관련의 여러 논문 중 포항정신의 정체성을 규명한 첫 논문은 박기환 시장 재임시 필자의 ‘포항정신문화의 전통성과 현대적 발전방안(1996)’이란 제목의 논문이며 두 번째 논문이 시승격50주년(1999)기념 학술심포지엄 ‘포항의 어제·오늘·내일’에서 발표한 제1주제 ‘포항정신은 무엇인가’였다.
이러한 시각에서 포항발전의 특유한 가치관, 위기 때마다 시대적 과제를 담당하며 포항을 지탱해 온 큰 뿌리, 즉 ‘포항정신의 정체성(identity)이 무엇인가’를 규명해 새천년 21세기의 도전에 포항정신의 나아갈 길을 꾸준히 전망하는 일은 중요한 일이다.
그동안 포항정신으로는 연오랑세오녀 일월신화의 광명정대정신을 필두로 개척정신, 화합정신, 충절정신 등이 구현됐음을 밝히게 됐다.
필자는 1968년 인생의 황금기인 28세의 청년으로 포항에 정착해 10년 가까이 어촌·농촌·산촌의 불우한 학생지도를 해 재능기부를 했다.
1978년 3월 포항실업전문학교 하태환 학장님의 배려로 전임 발령을 받은(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민족의 주체성 확립을 위해 전문대학과 대학에 한국사 교육을 권고하였다) 후 2006년 8월 31일 정년퇴임을 했다. 이후 2010년까지 4년간 초빙교수가 돼 대학에서 32년을 봉직했으며 42년간의  교직생활로 정년 때에 정부로부터 녹조근정훈장을 받았다.   
4·19혁명이 일어나던 1960년, 포항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모님 은혜로 청운의 꿈을 안고 고려대학교 사학과에 유학(?)해 아들을 낳으면 서울에 보내야 한다는 말대로 7남매의 맏이로서 서울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곧이어 박정희 대통령의 1962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발표되면서 산업사회 진입으로 국가발전의 큰 전기를 맞게 됐다.
서울에서 산업사회 장래성을 내다보며 공과와 기술계통을 주목해 동생들을 한양공대 기계과와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 기계과와 금속과에 진학토록 주선했다. 당시 서울생활의 비용은 각종 과외지도, 학과 성적장학금 및 부모님의 향토장학금 등으로 충당해 나갔다.

대학과 대학원을 수료해 바야흐로 서울 입성의 터전을 닦던 중 1968년 28세 때 선비의 갑작스런 타계로 선고(先考)를 받들어 가정을 지키고자 서울생활의 꿈을 접고 낙향하게 됐다. 1년여만에 선고를 위해 새어머니를 맞아드리고 얼마 후 두 분은 방을 따로 얻어 거처를 가까운 곳에 옮기게 됐다.
대학원 다닐 때 오로지 대학교수에만 몰두하고 교사자격증에 관심을 두지 않아 취득 기회를 놓쳐 당시 교사자격증이 없었다. 1968년 10월에 포항에 내려왔으나 막상 정규 중고등학교에 취직할 수가 없었다.
1973년 9월부터 1977년 7월까지 포항간호전문대학의 교양 한국사 강사로 초빙됐으나 마땅한 직장이 정해질 때까지 불우학생들을 모아 가르치는 교사로서 보람을 갖고 싶었다. 당시 포항에 포항협성고등공민학교, 포항협성상업전수학교, 포항재건학교 등의 각종 학교가 있었다. 향학열은 넘치나 가정형편이 어려워 정규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자녀들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수십리를 걸어다니며 공부했다.
각종 학교 졸업생은 정규학교에 입학할 때 검정고시 몇 과목을 면제받을 수 있는 혜택이 있었다. 1977년 말까지 9년간 당시 포항에서는 최고의 학력으로 한국사·세계사·한문·영어 등 4과목을 가르쳐 학생들의 자부심을 일깨웠다. 
인생의 황금기인 28~37세 때 필자는 희망봉 꼭대기에 콘셋트 건물을 지어 교사로 삼았던 포항협성전수학교에서 불우한 학생들을 통해 9년간 배우며 가르치는 교학상장의 자세로 인생의 알찬 시절을 보냈다.
이 시기에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역사교육과에 진학해 석사학위와 교사자격증 준교사자격증을 취득했을 뿐만 아니라 향학열에 불탄 불우한 환경의 학생들 가정을 방문하면서 각 가정의 다양한 삶의 환경을 접하고 살피면서 참 인생의 가치를 배우고 경험해 깨달으면서 성숙한 삶을 전망하게 됐다.
그러나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는 명언이 나에게 실현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학위와 자격증을 취득하자마자 바로 그달 2월에 하태환 학장님의 부름을 받고 그동안 그렇게 갈망해 왔던 고향의 포항실업전문대학교 전임강사로 발령을 받게 된 것이다.
1991년 9월부터 6년동안 성신여대 대학원에서 ‘박은식과 신채호사상의 비교연구’논문으로 박사학위 취득 후, 1980년 9월부터 1997년말까지 포항시 민방위대 소양교육강사와 통일부장관 위촉 통일교육전문위원, 독립유공자 서훈심사위원, 포항문화원 부원장을 거처 2015년 2월 포항문화원장에 취임했다.
1987년 ‘포항시사’와 1990년 ‘영일군사’ 집필에 참여하면서 포항시와 영일군 역사문화를 탐구하기 시작해 1999년 ‘포항시사’상·하, 2010년 4월의 ‘포항시사’(제1권~제3권)의 편찬위원과 집필위원장을 맡았다. 
‘권두언’, 제4장 근세의 ‘임진왜란과 이고장의 창의’, 제5장 근대태동기의 ‘제1 행정조직’, ‘3. 포항진의 설폐’, ‘3) 향토수산식품 과메기’, ‘3. 국가 진휼창, 포항창진의 설립과 해운의 발달’, ‘4. 포항지명 탄생’, ‘5. 장시의 형성과 상업발전’, ‘장시의 형성과 상업발전’, ‘3) 부조장’, 제 6장 근대(일제강점과 민족운동기)의 제 1절 지방제도 개편과 영일군의 출범, 제2절 중요 행정기관, 제3절 외세침략과 민족의 항전(1.2.3.4.6), 제4절 산업 경제생활(2.수산업 3.상업의 1.2.3.4.5), 제5절 사회와 인구변화(1. 인구의 변동, 2.일본인 이주와 증가 추이, 포항사회의 변화와 중요 사건들), 제6절 체신·교통·운수·항만(3. 도로운수, 4. 해운과 항만) 등을 집필해 포항인으로서 자긍심과 보람을 지니게 됐다.
그동안 포항 역사문화의 전통적 정체성(포항의 문화재유산, 자연유산, 복합문화유산), 한국에서 가장 해가 먼저 뜨는 해맞이의 성지, 일월 상징의 고장 연오랑세오녀 고장, 왜구 침입의 요충지, 충의의 사표 정몽주 고향, 경북의 젓줄 형산강 강물과 영일만 바닷물이 만나는 중요 지점, 육해군 군사기지의 고장(여말 통양포만호진 등), 포스코대교에서 영일대까지 30리 백사장 어링불(어리잇불, 어리잇 모래사장, 魚龍沙), 고대로부터 경북의 관문, 죽장 상·하옥 계곡의 절경, 송도 송립숲, 일제병탄기 산남의진 최세윤 의병대장의 항쟁, 국립등대박물관, 포항운하, 17대 이명박 대통령을 배출한 신화의 고장(연오랑세오녀 신화, 한국 근대화의 상징 포스코 신화 등) 등 ‘포항을 알면 미래가 보인다’ 즉, 포항정신의 모태인 연오랑세오녀 일월정신(광명정대, 개척, 화합, 충절정신)을 내외에 홍보해 포항의 정체성과 문화시민의 자긍심을 심는데 주력해 왔다.
이러한 노력으로 연오랑세오녀는 포항의 브랜드가 돼 이강덕 시장과 문명호 의장이 앞장서 홍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실존인물 연오랑세오녀 일월신화는 바야흐로 문화원장의 아호인 진촌의 아이콘으로 각인돼 뿌듯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기사
  • 경북 포항시 남구 중앙로 66-1번지 경북도민일보
  • 대표전화 : 054-283-8100
  • 팩스 : 054-283-5335
  • 청소년보호책임자 : 모용복 국장
  • 법인명 : 경북도민일보(주)
  • 제호 : 경북도민일보
  • 등록번호 : 경북 가 00003
  • 인터넷 등록번호 : 경북 아 00716
  • 등록일 : 2004-03-24
  • 발행일 : 2004-03-30
  • 발행인 : 박세환
  • 대표이사 : 김찬수
  • 경북도민일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북도민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HiDominNews@hidomin.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