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 국민·국가 전체차원 효용 분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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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 국민·국가 전체차원 효용 분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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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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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목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번역학 전공

[경북도민일보]  유럽 중세사에 있어서 성과 속의 끊임없는 공존과 갈등, 때로는 협조 가운데 다양한 사건이 발생하였지만 그 중의 백미는 1077년 1월에 일어난 카놋사의 굴욕(Humiliation at Canossa)이다. 카놋사는 오늘날 북부 이태리의 작은 도시이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는 세속의 군주가 주교를 임명하는 관행을 금지하는 칙령을 발표하였다. 이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4세는 이에 반발하여 주교들을 임명하였을 뿐만 아니라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를 폐위하였다. 교황도 하인리히 4세를 파문하였다. 서로 폐위하고 파문하는 싸움에서 하인리히 4세는 당시 교황이 머물던 카놋사의 성에 찾아가 한겨울에 무릎을 꿇고 앉아 용서를 빌면서 사면을 청하였다. 당시의 로마교황의 절대적인 권위 하에 파문은 왕권자체의 소멸을 의미했다. 이에 교황은 파문을 취소한다. 유럽 중세시대에 교회로부터의 파문은 가장 강력하고 치명적인 최후의 벌이다. 영어로 파문은 ‘anathema’, 또는 ‘excommunication’로 번역된다. 어원상 모두 싫어하고 멀리 내쫓는 의미를 가진다. 결국 파문은 저주의 대상으로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닌 죽음과 같은 처절한 것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팽형(烹刑)이라는 형벌이 있다. 말 그대로 끓는 물에 넣어 죽이는 사형의 한가지 방법이다. 이러한 팽형이 조선시대에 넘어와서는 실제로 죄인을 끓는 물에 넣어 죽이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명예형으로 변화하였다. 죄를 범한 죄인은 실제로 물이 끓는 것이 아닌, 끓이는 시늉만 하는 가마솥에 들어간다. 그냥 들어갔다가 나오면 이 죄인은 살아도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죄인의 집에서는 이 날이 이 죄인의 제삿날로 여기고 제사를 지낸다. 이 죄인은 그 누구도 아는 체를 할 수도 없다. 말 그대로 투명인간이다. 역시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죽은 존재이다.
 나타니엘 호손(Nathaniel Hawthorne)의 소설 ‘주홍글씨(The Scarlet Letter)’에는 17세기 미국의 이민초기에 신대륙의 엄격한 청교도적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던 사회에서 간통을 저지른 여인은 그 징표로 주홍글씨라는 표식, ‘Adultery(간통)’의 ‘A’자를 가슴에 새긴 채 평생을 살아야 가야했던 시대상을 보여준다.
 카놋사의 파문이나, 팽형이나, 주홍글씨는 모두 살아도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파문이나 파면이나 파경이나 파자 돌림들은 쫓겨나고, 깨어지고 슬프고 무섭기는 매 마찬가지이다. 사랑도 에로틱, 육체적 사랑이 있고 플라토틱, 정신적인 사랑이 있는 것처럼, 형벌도 육체적인 형벌, 그리고 정신적 형벌도 분명히 있다. 대통령의 탄핵으로 인한 파면으로 이미 정신적인 형벌은 정치적인 죽음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모 방송사(KBS)와 여론조사기관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박근혜 전 대통령이 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을 경우 차기 대통령이 박 전 대통령을 특별 사면복권 하는 것에 대해, 67.6%가 반대한다고 답했다. 찬성한다는 응답은 25.1%, 모르거나 응답하지 않은 경우는 7.3%였다는 것이다. 연령별로는 30대에서 86.5%로 반대 의견이 가장 높았고, 20대 85.2%, 40대 79.2%, 50대 58.8%가 사면복권에 반대했다고 하는데, 반면 60대 이상에서는 사면에 찬성한다는 의견이 50.7%로 반대 38.4%, 모름/무응답 10.9%보다 높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지지정당별로는 정의당 91.9%, 더불어민주당 90.5%, 국민의당 65.1%, 바른정당 54.6%로 사면반대 의견이 높았지만 자유한국당 지지층에서는 81.1%가 사면 복권에 찬성했다는 것이다. 사면반대에 대한 정당별 의견은 여론조사 하나마나 알 수 있는 사실이고, 연령대에 따른 여론도 젊은 층이 엄격한 법의 집행을 원하는 반면, 50대, 60대로 나이가 들수록 사면에 찬성의 의견을 보인다는 것은 살아온 세월에 비례해서 법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 측은지심이 더 많다는 점, 탄핵이라는 정치적 사건은 이미 그 자체만으로도 살아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닌 정치적 파문, 정치적 팽형, 그리고 정치적 주홍글씨가 이미 새겨졌다는 것을 이미 세월의 무게로 공감하는게 아닐까 한다.
 사면의 역사적 유래는 전통적 절대군주시대의 은전권(恩典權)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사면권이 대통령제에서 채택되어 사법부가 행한 권한행사에 대한 조정 및 통제로 부여된 것이 사면권이다. 중세 내지는 근대에 인치(人治)시대의 군주가 가진 권한이 법치(法治)국가인 현대에 있어서도 존재하는 것이 아이러니하기는 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에 대하여 언급이 되고 있다. 현재 찬, 반의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특별사면은 국회의 동의없이도 대통령이 결정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현재 대선후보들 중 누구는 찬성을, 누구는 반대의 의견을, 누구는 언급하지는 않지만 사면에 대해 어떤 생각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전직 대통령 중에 둘이나 사면을 받은 적이 있으니 사면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거나, 절대로 사면되어서는 안된다는 주장은 다 섣부르다.
 사면의 여부는 국민과 국가 전체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법률 등 전체 총합의 효용에서 효익과 비용분석을 통하여 그 전체적 효익이 큰 방향으로 결정을 내려야 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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