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0년 전통축제 ‘경산자인단오제’ 볼거리 풍성
  • 추교원기자
1100년 전통축제 ‘경산자인단오제’ 볼거리 풍성
  • 추교원기자
  • 승인 2017.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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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27일부터 나흘간 열려
▲ 경산자인단오제 행사의 하나인 창포물에 머리감기.
▲ 한장군 사당에서 제사를 지내는 모습.

[경북도민일보 = 추교원기자]  단오(음력 5월 5일)를 지내는 방법은 지방마다 특색이 있지만 그 근간은 대동소이하다.
 각 가정에서는 몸과 집 주위를 청결히 한 후 부락 단위의 동제(洞祭)형식으로 지황과 산신들에게 귀신을 물리치고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관행으로 해왔다.
 여자들은 창포를 삶은 물로 머리를 감고 그네뛰기를 즐기며 남자들은 씨름으로 체력을 발산시켰다. 또 탈놀이 등 여러 가지 민속놀이를 즐기기도 했다. 옛날과 같은 단오 행사가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는 곳은 우리나라에서 흔하지 않다.
 경북의 경산 자인 지방에는 약 1100년 전부터 전승돼 온다고 전하는 단오제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기록과 구전을 종합하면 9세기 전후 신라시대에 왜구들이 자인의 도천산에서 성을 쌓고 기거하면서 주민들을 괴롭히자 한 장군이 이들을 섬멸하기 위해 그의 누이와 함께 버들 못 뚝에서 꽃관을 쓰고 광대들의 풍악에 맞춰 지역의 장정들과 함께 춤을 추면서 이들을 못 뚝으로 유인해 섬멸했다고 하는데 이때 한 장군 오누이가 함께 추었던 춤을 여원무(한장군 놀이)라고 부르게 됐다. 이후 한장군은 자인 태수(신라때 군의 으뜸 벼슬)가 됐다.
 한장군이 죽은 후에 자인 주민들은 그의 충의를 추앙해 여러 곳에 사당을 세웠고, 고대의 명절인 단오절에 추모 제사를 모신 후 여원무와 배우잡희, 자인단오굿, 씨름, 그네 등 다채로운 민속놀이로 3~4일을 즐겼는데 이것이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는 자인단오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한장군 놀이가 1971년 3월 16일 국가무형문화재 제44호로 지정됐고 1991년부터 한장군대제, 여원무, 호장장군행렬(가장행렬), 팔광대 놀이, 자인단오굿 등을 합해 지정문화재 5종목을 매년 음력 5월 5일 자인단오-한장군 놀이로 전해져 오다가 2007년 3월 12일 문화재청의 승인을 얻어 경산자인단오제로 명칭이 변경됐다.
 올해 경산자인단오제는 오는 27일부터 30일까지 나흘간 펼쳐진다.
 
 △ 경산자인단오제의 특징
 1971년 3월 16일 국가무형문화재 제44호로 지정된 한장군 놀이를 비롯한 경산자인단오제는 경산시 자인면 지역 주민들의 고을 수호신인 한장군에게 행하는 제례로서 한묘제를 올리고 자인단오굿, 호장장군행렬(가장행렬), 여원무, 팔광대 놀이, 자인계정들소리, 씨름, 그네 등의 각종 민속 연희를 연행하는 방대한 형태의 고을굿이었다.
 충의 정신에 연원하는 민속 제의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예도 드문 일이며 대부분의 민속놀이가 부락 단위에서 이뤄져 왔지만 자인단오제는 자인현 전체 주민들의 마음이 응집돼 이어져 온 것으로 여원무, 자인팔광대놀이, 호장장군행렬 등 우리지역 전통문화의 산실로서 충분히 보존할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이다. 화관을 들고 추는 여원무는 길이가 2m의 화려한 화관의 모양이나 춤의 예태가 예술적으로 독특한 장르의 춤으로 이 여원화는 꽃의 수는 500개 꽃관의 지름이 60㎝, 높이가 2m나 된다.
 경산자인단오제에서 눈여겨 봐야 할 5개 종목은 호장장군행렬, 한장군대제, 여원무, 자인단오굿, 팔광대놀이다.
 
 △ 호장장군행렬(가장행렬)
 단옷날 아침 한장군 사당으로 제사를 지내려가는 제관들의 행렬을 말하는데 조선시대 사또 행차와 같은 격식과 채비를 갖추고 진충묘 등 단오 행사장으로 향하는 행렬로 반상의 계급사회에서 현감이 평민에게 현감의 복장을 빌려줘 사또가 행차하는 것과 같은 행렬을 하게 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지지만 자인 지역에서 한장군을 수호신으로 추앙해 왔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호장은 단오행사를 책임지고 진행하기 위한 1일 사또 행차로 고려시대 때 고을을 다스리던 우두머리를 말한다.
 수많은 인원과 말이 동원된 행렬 중에는 거문고, 가야금, 북, 장구, 해금, 피리 등 삼현육각의 풍악을 연주했고 호적, 나팔 등이 곁들여져 군악을 연상하게 했다. 또 징, 장고, 북 , 꽹과리 등의 풍물도 있어서 흥을 돋우었고 대열 중에는 3m가 넘는 여원화가 춤으로 덩실거렸으며 여러 역할로 분장해 말을 타고 따르는 무리들과 바람에 나부끼는 수많은 깃발들로 가히 장관을 이뤘다. 이것은 사또 행차의 규범과 궁중악, 민속악, 무용 등이 곁들인 것이다.
 한일합방 전의 옛날 호장굿은 자인장터에서 출발해 자인현 청사(자인초등학교 부근) 앞을 지나 한장군이 왜구를 섬멸한 버들못(유지)가에 도착해 간단한 제사와 여원무를 연행한 후 한장군의 사당이 있는 계정숲 진충묘로 와서 정성껏 한장군제를 지내고 여원무를 공연했으며 다시 제2 한묘에 가서 제사를 지내고 여원무를 공연한 뒤 자인현청으로 가서 현감 앞에서 여원무 공연을 끝으로 호장굿 행사를 종료하고 이어서 지역민을 위한 여흥으로 들어갔다.
 1991년부터 자인여자전산고등학교에 식장이 마련돼 간단한 기념식과 여원무, 농악 등 을 공연한 뒤 행렬이 시작됐는데 자인 시가지를 지나 계정숲 진충묘에 도착해 한장군제를 지낸 후 여흥에 들어갔다.

 2004년부터 계정숲 내 열린문화마당이 조성되고 난 후 계정 숲을 출발해 자인 시가지를 돌아오는 가장행렬이 재현돼 오다 2007년 3월 12일 자인단오-한장군 놀이가 경산자인단오제로 명칭이 변경됐다.
 
 △ 한장군대제
 단옷날 아침 자인지역의 수호신인 한장군의 충의를 기리는 제례로서 한장군의 영혼을 달래고 추모하는 제사이다. 단옷날 5개 지역(자인원당, 용성 대종, 가척, 진량 현내, 계정숲 진충묘)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으며 계정숲 한장군 사당(진충묘)에서 매년 한장군대제를 모시고 있다.
 
 △ 여원무
 여원무(한장군 놀이)는 지금부터 약 1100여년전, 9세기 전후 신라시대에 왜구들이 이곳 자인의 도천산에 성을 쌓고 기거하면서 주민들을 괴롭히자 한장군은 누이와 함께 이들을 섬멸할 계교를 내고 거짓으로 춤을 추는 놀이판을 벌이게 됐다.
 한장군이 여자로 가장해 그의 누이와 함께 화려한 꽃관을 쓰고 버들못에서 춤을 추고 춤을 추는 둘레에는 광대들이 풍악을 울려 흥을 돋우고 화려한 놀이판을 벌였으니 이것이 곧 여원무가 됐다.
 한장군의 뜻대로 구경꾼 중에는 도천산에서 내려온 왜구의 무리도 섞여 있었다. 그들은 처음에는 경계하는 눈치였으나 여원무의 신기함에 눈이 팔리고 풍악의 흥겨움에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 한가운데서 춤을 추던 한장군이 무어라 외쳤다. 함성이 일어남과 함께 왜구의 무리들은 칡으로 만든 그물에 휘말려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모조리 죽여 저 연못에 던져라” 아름다운 꽃 춤의 주인공은 무서운 장군으로 바뀌어 외쳤다. 무당과 구경꾼들의 손에는 모두 비수가 번쩍였다. 춤추던 이도 구경꾼들도 모두 한장군이 미리 배치해 두었던 무사요, 칡으로 만든 그물도 미리 깔아 두었던 것이다. 왜구의 무리들은 때죽음을 당했고 못물은 핏빛으로 바뀌었다.
 지금도 버들못에는 왜구의 무리를 벨 때의 칼자국이 남은 바위돌이 있는데 이 돌을 이 지역 사람들은 검흔석이라고 부른다.
 한장군이 죽은 후 그의 충의정신을 추앙하는 사당이 생겼고 해마다 단오절에 제사를 모시어 성대한 놀이가 벌어졌으니 이것이 곧 여원무(한장군놀이)이다.
 여원무가 1971년 국가무형문화재 제44호로 지정됐고 1991년부터 한장군대제, 여원무, 호장장군행렬, 팔광대 놀이, 자인단오굿을 합해  매년 음력 5월 5일 경산자인단오제 주요 행사종목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 자인단오굿
 여원무를 추면서 왜구를 물리친 자인 지역의 고을 수호신이었던 한장군과 그의 누이의 충의를 기리고 지역주민들의 무사안일과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단오굿으로 계정숲 내 시중당에서 단옷날 시행되는 경산자인 단오제의 중요 부분이다. 단오굿과 관련되는 내용은 △신주물 떠오기와 신주빚기 △산신제와 당산제 △4개 한당 순회제(한장군 신위모시기 당제) △버들못 영신제 및 단오전야 호장행렬 등이 있다.

 △ 팔광대 놀이
 자인팔광대 놀이는 경북 경산시 자인면에서 전래돼 오는 민속 가면극으로 국가무형문화재 제44호인 경산자인단오제의 다섯 마당 중 하나이다.
 신라시대부터 계승된 자인단오제에서는 한장군제를 지낸 후에 마을수호신인 한장군을 추모하며 여원무와 함께 배우잡희를 열었는데 이것이 팔광대 놀이의 전신이다.
 자인팔광대는 1936년 공연을 마지막으로 일제의 문화말살정책으로 그 맥이 끊겼다가 48년이 지나서야 1984년 복원 작업이 시작되고 1985년에는 자인팔광대 보존회를 설립해 1986년 시연을 한 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88년 제29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문광부 장관상을 수상해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됐다. 공연자는 가면을 쓴 광대가 8명, 악사 4명, 기수 1명 등 도합 13명으로 구성되며 자인팔광대의 명칭은 바로 가면을 쓴 광대가 8명인데서 명명됐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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