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갈등’ 굳바이, ‘지역감정’ 웰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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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갈등’ 굳바이, ‘지역감정’ 웰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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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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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목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번역학 전공

[경북도민일보] 필자가 근무하는 대학교에는 수십명의 영어 원어민 교수가 있다. 이전에 근무했던 대학교에서도 수십 명의 영어 원어민교수가 있었다.
 당시 그 중 한 명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교수가 영국식 영어로 말하길래 내가 “당신은 영국사람이지요?”라고 물어보면서, 영국인이라는 의미로 ‘브리티쉬’(British)를 사용했어야 했는데 무심코 ‘잉글리쉬’(English)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브리티쉬’는 영국 섬(Britain) 전체를 의미하고, ‘잉글리쉬’는 좁은 의미로 영국 중에서도 잉글랜드(England)지역을 의미한다. 이 원어민교수는 정색을 하면서 자신은 ‘스코틀랜드인’(Scottish)이라고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스코티쉬’(Scottish), 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스카치 위스키의 ‘스카치’(Scotch)가 같은 뜻이다. 우리가 영국이라고 부르는 영국연합왕국은 잉글랜드(England), 웨일즈(Wales), 스코틀랜드(Scotland), 북아일랜드(Northern Ireland) 가 합쳐서 이루는 왕국이다. 아마도 이 원어민교수는 잉글랜드가 스코틀랜드를 합병해서 감정이 좋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각각 앵글로색슨족과 캘트족으로 민족의 기원을 달리한다. 역사적으로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의 지배를 받아왔으며, 영국의 일부가 되었다. 2014년 영국중앙정부로부터 스코틀랜드의 분리, 독립을 묻는 국민투표가 실시되었고, 그 결과는 부결이었다. 어쨌든 영국에도 지역감정은 존재한다.
 오늘날의 독일은 과거 신성로마제국 시절의 제후국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제후들이 국왕의 선거에 개입하고 자치권을 확보함에 따라 왕권은 약화되었고, 따라서 독일지역은 여전히 많은 소국가와 이들의 이합집산으로 이루어진 크고 작은 연방들로 구성되어 프랑스, 스페인, 러시아, 영국에 비해서 근대국가의 성립이 지체되었다. 독일지역의 수백 개의 군소 연방들은 1871년 프로이센(Preussen)의 비스마르크(Bismarck)에 의해 통일됨으로써 근대국가의 체계를 갖추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독일은 다양한 지방색, 지역감정이 존재한다. 독일의 북부지역에는 공업이 발달하고 남부지역에는 농업이 발달하였으며, 경제적으로 북부가 부유한 경향을 보인다. 이태리 역시 밀라노 등 북부지역에는 공업이 발달하였고, 남부는 대체로 농업지대로 공업에 기반을 둔 북부지역이 상대적으로 부유하다. 독일과 이태리도 남부와 북부지역에 지역감정이 존재한다. 일본의 경우, 대표적으로 관동지방의 도쿄(東京), 관서지방의 오사카(大阪)가 그러하다. 역사적으로 관서지방의 교토(京都)가 한국의 경주처럼 천년이상 일본의 수도였는데, 에도시대에 동경으로 천도함으로 경쟁관계가 형성되고 라이벌의식과 지역감정이 존재하게 되었다.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독립이후 공업기반의 북부와 농업기반의 남부가 남북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표면적으로는 노예해방이지만 노예제도에 기반한 농업 중심의 남부와 공장노동자를 필요로 하는 북부의 정치, 경제적인 갈등이 존재했다. 오늘날에도 남부는 북부를 양키(Yankee)라고 부르며 달가워하지 않는다. 중국도 베트남도 지역감정이 있다. 다 있다.

 우리나라도 역사적으로 고구려, 백제, 신라, 그리고 후삼국시대등을 거치면서 지역국가가 통일국가가 되면서 하나의 국가를 유지해 왔다. 지역별로 당연히 존재하는 지역감정이 지역갈등으로 문제가 된 것은 과거 1960년대에서 90년대에 이르기까지 주로 영남지역의 인맥이 정치, 경제의 중심이 되고, 정치인들에 의해 대선, 총선 등 각종 선거에 이용됨에 따라 갈등이 증폭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시절에는 당(黨)과 지역은 일치했다. 과거 민정당은 경상도, 민주당은 전라도, 자민련은 충청, 이렇게 정확하게 등식이 성립되었다. 80년대 당시 자신의 출신지역이 아닌 곳에 선거유세를 가면 돌팔매질은 기본 메뉴였다. 그러나 80년대 말, 90년대, 그리고 2000년대에 ‘1노3김’ 시대에서 권력의 구심점이 대구, 부산, 그리고 광주를 거치면서 1노와 2김이 대통령이 되었다. 김종필 전 총리도 대통령이 되었다면 완벽한 3김 트리오(trio)가 될 뻔했다. 그 시절을 거치면서 지역갈등은 상당히 해소되었다고 본다. 오늘날에는 당과 지역은 등식관계가 일치하지 않는다. 정말 다행이고 발전이다. 이번의 대선을 봐도 그렇다. 이전과는 다르다.
 지역감정은 윗마을과 아랫마을에도 존재한다. 필자는 70년대 초, 어린 시절, 대구광역시 서구의 비산동에서 자랐다. 당시에는 행정구역상 경상북도 대구시였다. 비산(飛山)동의 의미는 나르는 산, 순우리말로는 날뫼이다. 필자는 그 산이 이 산인지는 모르겠지만, 산에서 아래에 있는 마을에 살았는데 산 정상 가까운 마을에는 윗마을이 있었다. 윗마을, 아랫마을에도 지역감정이 있었다. 산 가까이 지나칠 때면 윗동네 형들이 불러 세우고는 불심검문(?)을 하곤 했다. 그 때에는 그 동네에 사는 우리 반 친구와 친구 형 이름을 대고는 풀려나 가던 길을 계속 갈수 있었다. 지역감정의 다른 말은 지역사랑이다. 감정에는 호감, 반감 등 여러 감정이 있을 수 있다. 인간이라면 지역감정은 있을 수밖에 없다. “고향까마귀만 보아도 반갑다”는 말도 있다.문제는 지역 갈등인 것이다.
 필자가 공군에서 장교로 근무할 때의 일이다. 미공군과 같이 근무하면서 오산에 출장을 갈 때의 일이다. 요즘에는 하사관이 아니라 부사관이라고 하는데 당시 오산에 같이 갔던 이 하사는 콩글리쉬(!)의 대가였다. 업무를 끝마치고 오산에서 서울로 가는 미군 차량을 히치하이크(Hitch Hike), 즉 얻어 타고 가려는데, 이 친구가 부대를 벗어나려는 미군 차량의 운전기사에게 한 영어는 “오산 Good bye, 서울 Welcome, O.K.?”였다. 이 말도 안되는 세 마디를 운전기사는 다 알아 듣고 “O.K.!”, 차에 타라는 허락을 하였다. “오산 굳바이, 서울 웰컴, 오케이?”의 오산과 서울 자리에 필자는 제목과 같이 ‘지역갈등’ 굳바이, ‘지역감정’ 웰컴!을 대입하고 싶다.
 지역 간의 갈등과 앙금은 내보내고, 내 지역 사랑, 지역의 애정, 지역감정은 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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